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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옛 선비의 풍류가 흐르는… 정자의 고장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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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옛 선비의 풍류가 흐르는… 정자의 고장 봉화

입력
2009.07.3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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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땅 경북 봉화군은 정자의 고장이다. 봉화 땅 여기저기에 100개 가까운 정자가 터를 잡고 있다. 사라진 정자까지 합하면 17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숫자다.

봉화의 많은 정자들 중 최고로 꼽는 곳은 봉화읍 닭실마을의 청암정이다.

닭실마을은 조선조 권문세가인 안동 권씨 일가의 집성촌이다. 마을의 지세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닭실마을로 불린다.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충재 권벌 선생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지금도 120여가구가 함께 모여 산다.

종택의 한쪽 가에 연못으로 둘러싸인 청암정이 있다. 기묘한 생김새의 거북 바위에 정자가 살포시 내려 앉아 있다. 인공과 자연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를 보완하는, 최적의 조화가 만든 절경이다. 종택의 종손 권용철(66)씨는 "담양군의 소쇄원하고도 바꿀 수 없는 걸작"이라고 했다.

정자 한쪽엔 마루가 아닌 온돌이 깔렸었다고 한다. 겨울에 춥기 때문에 군불을 때야만 했다. 당시 불을 때면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 괴히 여기던 중 지나가던 한 스님이 거북이 등에 불을 지펴선 안 된다고 해 아궁이와 온돌을 없애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청암정은 기가 세다고 한다. 해가 어둑해질 무렵 정자에 앉아 있으면 머리 끝이 쭈뼛 서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종손의 아들 종목(37)씨는 "밤에 혼자 정자에서 잠을 청해 봤지만 쿵쿵 소리가 나는 것 같고 정자가 살아 꿈틀대는 것 같아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다"고 경험을 털어 놓았다.

청암정은 손님을 맞거나 동네 어르신들이 책을 읽고 시회를 여는 장소로 활용됐다. 이곳으로 식사를 내오기는 했지만 술상이 차려지진 않았다고 한다. 연회나 술자리는 인근 석천계곡의 석천정사에서 이뤄졌다.

청암정 앞에는 충재선생박물관이 있다. 원래 종택 마당에 있던 유물관을 옮겨 지은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허름해 보여도 이 박물관이 소유한 유물은 보물급만 482점에 달한다. 한 집안의 유물이 아닌 조선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이다.

닭실마을을 끼고 흐르는 석천계곡은 맑은 물과 울창한 송림, 기암괴석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계곡의 첫머리에 석천정사가 있다. 건물은 지금 해체 복원 중이다. 일제 때 덧씌운 시멘트 석축이 벗겨지면서 전통 석축이 제 모습을 찾고 있다.

공사 중인 탓에 정자의 아름다움이 쉽게 와 닿진 않는다. 공사 중인 건물 안에 들어가 창 밖으로 계곡을 바라보니 석천계곡이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계곡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창틀의 프레임이 담고 있었다.

충재 집안은 춘양면에 한수정이란 또 다른 아름다운 정자를 가지고 있다.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의 이름이다. 날렵한 팔작지붕의 정자를 연못이 3면으로 감싸고 있다.

봉화읍 초입의 도암정도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한다. 정자 앞 너른 연못에는 수박만한 연꽃들이 만개해 있다. 동그란 인공섬에는 소나무 한 그루 곧게 뻗어 올랐다. 정자 오른편에는 커다랗고 둥글둥글한 3개의 바위가 모여 있다.

우애 좋은 삼형제를 모아 놓은 듯 정겨운 모습이다. 도암정 문이 열려 있어 정자 위로 올라섰다. 마루판 여기저기에 재떨이와 장기판 바둑판이 놓여져 있다. 지금도 편안한 쉼터로 주민들과 호흡하는 공간이다.

석천계곡과 겨룰만한 계곡으로 사미정계곡이 있다. 이 계곡의 초입에 있는 사미정도 꽤나 운치있는 정자다.

봉화= 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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