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63> 화상 충격 딛고 일어서는 진병석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63> 화상 충격 딛고 일어서는 진병석씨

입력
2009.07.31 00:47
0 0

남자 나이 40대 초반이면 사회에서 한창 활동할 때다. 집안에서는 아이들 재롱에 웃음 꽃이 만발할 시기다. 하지만 진병석(42ㆍ가명)씨는 오래 전에 그런 꿈을 접었다. 아니 꿈이 송두리째 깨져버렸다.

1995년 갑작스런 불행이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그도 여느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이었다. 내세울 건 없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내와 결혼해 아이 둘을 뒀고, 넉넉지 않지만, 그래도 월급을 받아 그럭저럭 가정을 꾸려갈 수 있었다.

병석씨는 당시 한 중소기업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평소 손재주가 좋았던 데다 작은 직장이지만 안정적이라 큰 걱정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사고는 한 순간에 터지고 말았다. 대형 파이프 안에 들어가서 천정을 보면서 이음매를 연결하는 '오버 헤드' 용접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근로자가 특정 할당량의 일을 끝내면 업무시간 이전이라도 곧바로 퇴근할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야리끼리'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야리끼리를 받는 병석씨는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용접 불꽃이 왼쪽 어깨에 떨어져 불이 붙은 줄도 몰랐다. "용접할 때 원래 불꽃이 보호장비 등으로 튀거든예. 그날도 옷에 튀는 불꽃이 그런 거라 생각해, 그래 불이 붙은 줄은 생각도 못했던 거라예."

왼쪽 어깨 부위가 뜨겁다고 느꼈을 때 이미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소리쳤지만, 주위에 도와 줄 사람은 없었다. 너무도 아팠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기억은 그 때까지 뿐이었던 것 같다. 불은 왼쪽 어깨와 팔, 그리고 왼쪽 얼굴과 귀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왼쪽 팔이 다 녹다시피 해 뼈까지 보일 정도였습니더."

인근 병원으로 급히 옮겨져 응급조치가 이뤄졌고, 다시 경상대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그 후 병원을 나오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수술을 밥 먹듯 했다. 엉덩이 부분에서 머리 피부까지, 떼어내 붙일 수 있는 피부는 모두 화상으로 손상된 곳에 이식됐다.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당시 2살이던 아들 경식(가명ㆍ16)이와 1살이던 딸 선희(가명ㆍ15)를 두고 아이들 엄마가 집을 나갔다. '오죽했으면 도망갔겠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너무나 원망스럽다. 눈에 넣어도 아프질 않을 어린 것들을 두고 혼자 살겠다고 나간 것을 떠올릴 때면 속이 뒤집힌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를 좀 찾는 것 같더니 지금은 엄마 얘기는 아예 하지도 않아예."

병석씨가 삼성중공업 봉사단체 '작은 모임' 회장인 김동기 기원(사무직 과장 수준의 현장 직급)을 만난 게 그 무렵이다. 김 회장을 비롯한 작은 모임 회원들은 병석씨 가정의 이런 딱한 상황을 안 뒤부터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가족처럼 병석씨 가족을 돕고 있다. 작은 모임 회원들은 그에게 형이나 친구로 다가왔고, 경식이와 선희에겐 선생님이자 삼촌, 이모가 됐다.

"엄마가 없어서 정서적인 안정이 절대적입니다. 최대한 자주 만나 '정'을 느끼게 하려고 했습니다." 별로 한 일이 없다는 김 회장은 자주 들러준 게 전부라며 겸연쩍어 했다. 매주 반찬 등 생필품을 지원해 주는 것은 물론, 아이들이 학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회원들이 돌아가며 가정학습도 시켜줬다.

주말에는 몸이 불편한 병석씨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놀아주고 외식하는 것도 회원들에겐 일상생활이 돼 버렸다. 2001년 발달장애로 진단을 받는 경식이의 치료비도 지원해 준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집을 마련해 준 주인공도 역시 작은 모임이다. 불우 이웃을 위한 임대 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안 작은 모임이 병석씨에게 임대 아파트 신청을 하도록 알려줬고, 임대보증금(1,500만원)의 절반도 부담해줬다.

"동기씨(작은 모임 회장) 억수로 착하다 아입니까. 고맙지예. 친척보다 더 낫지예" 작은 모임은 병석씨가 임대아파트로 입주하기 전까지 4번이나 이사할 때마다 일일찻집 행사 등을 열어 전세자금을 마련을 도와줬다.

작은 모임 덕분에 병석씨 생활이 많이 나아진 게 사실이지만, 95년 화재사고의 아픈 기억은 여전히 그의 온몸에 휘감겨 있다. 우울증이 차도가 없다. 화상 후유증이 심해 평생 진통제를 먹고 살아야 한다. 방 서랍 안에는 약봉투가 가득했다. 진통제에다 혈압약, 수면제, 우울증 치료제까지. 농약과 쥐약을 먹으며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아이들만 아니면…" 십여 년이란 고통의 세월이 너무 힘든 탓인지 눈가엔 금새 눈물이 맺혔다. 그래도 아이들이 큰 탈없이 자라주고, 형제자매 같은 작은 모임 회원들이 있어 오늘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몸이 안 좋다던 병석씨가 이번 주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고 한다. 그의 얼굴에 '작은 웃음꽃'이 다시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거제=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 삼성중공업의 사회공헌

삼성중공업의 사회봉사활동은 지역 말착형이다. 조선소가 있는 거제 주민들과 사실상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만큼, '나눠주기'보다는 '참여하기' 운동이 더 활발하다. 전체 임직원의 91%인 1만800여명이 봉사활동 동아리에 가입한 것이 단적인 예.

삼성중공업 사회공헌활동의 특징은 크게 업종의 특성을 살린 '전문화된 봉사'와 직원들의 특기를 살린 '이색봉사'로 나눌 수 있다.

전문화된 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는 선박을 만드는 회사의 특성을 살린 게 대부분이다. 조선부서가 인근 마을의 어선을 수리하거나 선착장을 보수해 주는 것을 비롯해 중장비 부서는 농기계 수리를, 도장부서는 마을회관 도색을, 용접부서는 어린이놀이터 보수 및 철제 운동기구 설치를 전담한다.

모두가 생활 밀착형이라 지역주민으로부터의 호응도 즉각적이다. 직원들 역시 자신의 기술을 살려 주민들을 돕다 보니 봉사활동이라기보다는 집안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동호회별 특성을 살린 이색 봉사활동은 삼성중공업 사회봉사활동의 큰 축이다. 수지침 연구회는 회원들이 수지침 시술로 노인들의 신경통을 덜어드리고 있고, 사내 풍물패인 어울 마당회는 사물놀이를 통해 장애인의 재활치료를 돕고 있다.

스킨 스쿠버 동호회 활동도 눈에 띈다. 지역환경 지킴이 사업으로 거제 '700리 해안 가꾸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역내 해수욕장 및 관광지 19개소와 해안가 37개 마을을 대상으로 연중 정화활동을 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고급 인력의 장점을 살린 학습지도도 인기가 높다. 지역 특성상 가정형편 때문에 과외 학습이 어려운 소외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선소내 석ㆍ박사급 연구원들이 수학 및 영어를 가르친다. 올해에는 인근 성포중, 동부중, 둔덕중 등 3곳에서 하고 있는데 시쳇말로 '인기 짱'이다.

또 외국선주사에서 파견 나온 외국인들로 구성된 봉사단은 인근 중고생 대상으로 일일 영어캠프를 열고 있다. 노르웨이, 핀란드 등 봉사활동이 몸에 밴 곳에서 온 외국인들의 참여도는 삼성중공업 직원들의 귀감이 될 정도다.

특히, '청소년 선도 119봉사단'은 설립 이래 7년간 학교 인근 우범지역과 유흥업소 주변 순찰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당초 지역 청소년 선도 목적으로 출발한 봉사단은 순찰 도중에 도둑을 잡거나, 성폭행 현장을 저지하고, 동절기에 길에 쓰러져 있는 취객을 무사히 귀가시키는 공로를 인정 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비롯해 경남도지사, 거제시장, 경남경찰청장, 거제경찰서장 등으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감사장과 표창을 받기도 했다.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은 "삼성중공업의 봉사활동은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생활 그 자체"라며 "앞으로도 직원들의 나눔활동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박기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