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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눈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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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눈 소리

입력
2009.07.3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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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걱정만 아니라면 매일 아침 빗소리에 잠이 깼으면 좋겠다. 예전엔 빗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창이나 마당 위에 가짜 지붕을 덧대곤 했다. 빗방울에도 얇은 플라스틱 루핑은 과장된 소리를 냈다. 빗줄기가 쏟아부을 때면 귀가 얼얼해질 만큼 소란스러워졌다. 집도 그렇고 사무실도 그렇고 요즘은 비가 내릴라치면 허겁지겁 창부터 닫고 본다. 처마가 없는 반듯한 건물들의 단점이다. 빗소리도 비 비린내도 즐길 수 없다.

비만 소리를 내며 내리는 것이 아니라 눈도 내리면서 기척을 낸다. 이십 년 전 대학 시절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학교 교지를 만들었고 그해 겨울에는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혼자 남아 있었다. 석유 곤로 위에서 주전자의 물이 끓었다. 쪽자 작업을 하느라 3M 풀이 묻은 손끝은 거무스름했고 끈끈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어떤 기척에 책상에서 고개를 들었다. 밀도 높은 고요와 침묵이 바로 문밖까지 와 있었다.

홀린 듯 일어서서 문을 열었고 밖으로 한 발 내딛었다.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지붕과 지붕들의 경계가 사라지고 길도 숨었다. 온세상이 눈빛으로 환했다. 눈은 내리면서 야금야금 세상의 소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한여름 눈 덮인 흰 세상을 생각하니 눈이 다 밝아진다. 눈이 내리면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지금 딱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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