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형제의 난' 왜 자주 일어나나/ 현대서 금호까지 경영권 분쟁 얼룩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형제의 난' 왜 자주 일어나나/ 현대서 금호까지 경영권 분쟁 얼룩

입력
2009.07.30 00:45
0 0

"형제간 싸움은 우리 그룹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2005년 두산그룹 박용오-박용성 두 오너간 이른바 '형제의 난'이 벌어졌을 때 금호아시아나그룹 오너일가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유지에 따라 '형제경영의 모범'을 실천하던 금호아시아나였던 만큼 그 말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상상도 할 수 없다던 일은 현실이 돼 버렸다. 도대체 재벌그룹에선 왜 이토록 경영권 분쟁이 끊이질 않는 것일까.

일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 '황금비율'이 깨지면서 다툼으로 비화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 배경에는 무엇보다 '형제애'를 앞서는 '자식사랑'이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금호가의 3세 중에서는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상무가 경영 수업에 가장 먼저 발을 들여 놓았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다른 형제들을 자극했다는 게 재계 주변 해석이다.

사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가장 심했던 곳은 현대그룹이다. 2000년 당시 정주영(작고) 명예회장이 노환을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서자 그룹의 쌍두마차 역할을 하던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작고) 회장은 한 치의 양보 없는 전쟁을 치렀다.

우애 넘치는 형제경영을 펴왔던 두산그룹도 박용오-박용성 회장 사이에 큰 분쟁을 겪었고, 한진그룹은 형제간 계열분리까지 완전히 끝난 상황임에도, 형제간 양보 없는 법정공방을 벌였다. 동아제약은 부자간, 형제간 대결구도가 형성됐고, 이밖에 롯데 한화 등도 일가 사이에 크고 작은 분쟁을 겪은 바 있다.

사실 '형제의 난'이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형제자매간의 경쟁과 다툼은 동서고금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실 주식의 비율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 경영진을 임명하고 이후 이를 평가하는 것이 바로 주식회사의 기본"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가족애를 강조하는 우리정서에 어긋날 뿐이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재벌들의 경영권 분쟁은 '부의 세습'이란 측면에서 다른 나라보다 정도가 심하다는 평가다. 즉, 창업 2세대들이 3세들에게 지분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파이 경쟁'이 훨씬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자기 자식에게 더 많은 재산을 넘겨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라며 "창업 2세대까지는 창업주의 유지도 있고 형제애도 발동이 되지만 한 세대를 더 넘어가면 형제애 보다는 재산과 경영권이 더 크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2세 보다 3세로 넘어가면 경영진(오너가족) 구성원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파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금호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임영재 KDI 선임연구위원은 "선진국의 대기업은 수백년의 역사를 통해서 자신에게 맞는 지배구조와 승계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반면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압축 성장 과정에서 이러한 승계 시스템을 갖출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재계에서 '형제의 난'이 재연되는 것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이해 당사자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승계의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A연구소의 한 수석연구원은 "형제의 난이 일어난 기업들의 공통점은 이해 관계자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승계의 원칙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불미스러운 일이 현실화하기 전에 이해 관계자간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기업 지배구조 논의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내 놓고 있다. B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대주주 가족이 사실상 경영권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데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며 "소액주주들의 주주권 보호를 위해 기업 경영 정보의 투명성을 더 높이고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