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한 줄의 글귀를 발견했다. '달천몽유록'은 조선 중기의 문신 윤계선이 지은 고전 소설이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이 이끌던 우리 군은 충주 달천에서 대패했다.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북상해오는 적과 대결하다 패한 신립은 부하 장수인 김여물과 강물에 투신해 자결하고 만다.
전쟁이 끝난 2년 뒤 윤계선은 달천에 도착했다. 죽은 군사들의 백골이 그대로 널려 있는 장면을 그는 이렇게 썼다. "달빛 아래 백골들이 흰꽃처럼 피어올랐다." 바로 그 문장. 마치 눈으로 본 듯 선명하게 펼쳐졌다. 몇 번이나 만월이 휘영청 떠오른 달천, 흰꽃처럼 피어오른 백골들 사이를 맨발로 걸었다. 뼛속의 인으로 하얗다 못해 파랗게 빛을 내뿜었을 백골들. 거둬가는 손길 하나 없이 쓸쓸히 잊혀져간 이들. 채 꽃 피워보지 못한 어린 청년들도 많았을 것이다.
500년 전 달천에서 60년 전 진주로 시간이 흘러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50년 이맘때 국민보도연맹원과 진주형무소 재소자 등 1,000여 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어 암매장되었다. 우부룩했던 커다란 구덩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평평해지고 흔적 없어졌다. 공포도 억울함도 없는, 표정이 사라진 백골은 맑은 소리를 낼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 모든 게 꿈이라고 아직도 못 믿겠다고 동그랗게 두 눈을 뜨고 있는 듯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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