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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천상병공원에서

입력
2009.07.2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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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랜만에 수락산으로 등산을 가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등산로 입구에 한창 공사 중이던 '천상병 공원'이 말끔하게 단장돼 있는 걸 봤다. 시인 천상병은 그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방문만 열면 바위산이 보이는 누옥에서, 여름이면 계곡물에 첨벙첨벙 목욕을 하며 살았다.

공원에는 예의 순진무구한 웃음을 짓는 천상병의 팔에 아이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의 동상이 섰고, 버튼을 누르면 여인의 낭랑한 목소리로 그의 시를 들려주는 기계도 설치됐다. '새'를 눌러본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이 시를 표제작으로 한 천상병의 시집 <새> 에는 사연이 있다. 1970년 말, 천상병이 행방불명되자 문우들은 그를 위해 60여편의 시를 묶어 <새> 를 그의 '유고 시집'으로 냈다. 시집이 나온 뒤 그가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동백림사건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6개월간 투옥됐다가 선고유예로 풀려난 천상병은 행려가 돼 청량리정신병원에 수용됐던 것이다.

문우들이 시집을 들고 찾아갔을 때 그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기저귀를 찬 채, 친구들을 웃음으로 맞았다고 한다. 천상병은 이후 인사동에서 '귀천'을 운영한 부인이 사 주는 하루 담배 한 갑과 막걸리 한 되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의 웃음처럼 무구한 시를 썼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귀천'에서)

하지만 이 아름다운 시 '귀천'은 결코 아름다움으로만 읽을 수 없다. 오늘 천상병공원에서 해맑은 여인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귀천'에서 그는 이 세상 살이가 소풍이며 아름다웠더라고 했지만, 그가 진정 세상을 아름다웠다고 생각했겠는가. 영문도 모르고 간첩사건에 연루돼 당한 고문의 기억, 그것을 종내 떨쳐버리지 못했을 그가 '하늘로 돌아가리라' 꿈꾸며 말한 역설일 뿐이다.

그가 죽고 13년이 흐른 2006년 1월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동백림사건의 불법 연행과 가혹행위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이미 '이 세상 소풍'을 끝낸 천상병에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살아서 그가 겪은 치욕과 고통은 그 누구도, 절대로,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천상병공원에서 녹음돼 흘러나오는 '새'를 들으며, 그를 그냥 '쉽고 좋은 시 많이 쓴 기인'으로 기억할 뿐인 것이다.

28일 진실화해위원회는 1974년 국군 보안사가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문인들의 개헌 저지 성명에 서명한 임헌영, 이호철, 김우종, 장병희, 정을병 등 문인 5명을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처벌한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이 가혹행위에 따른 허위자백 등으로 조작됐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등의 조치를 국가에 권고했다. 천상병이 당한 것과 같은 일이다. 사후 조치도 판박이다.

역사는 그렇게 해서 조금이나마 바로잡혀지겠지만 사건 당사자들이 겪은 고통과 운명의 변전은 무슨 의미일까. 혹 지금도 그런 고통을 겪는 이들은 없을까. 천상병과 문인간첩단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린 이들, 그 외에도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필화사건들, 활자화됐지만 금서라는 이름으로 읽히지 못했던 책들. 그 명단에서 지금은 아름답게 가꿔진 천상병공원이 떠오른 것이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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