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신문사와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완전 차단하는 조건으로 정부가 미디어 구조개편을 들고 나왔으면 상황이 지금과 달랐을까. 민주당과 진보단체와 언론, MBC노조가 다채널시대에 여론의 다양성에 발맞춘 '변화'라며 찬성을 했을까.
단어 몇 개만 다를 뿐, 십중팔구는 지금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정부가 언론장악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방송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을 것이다. '지금의 정부가 하는 것'이라면 합리성과 객관성을 떠나 그 어떤 것도 싫다는 얘기다. 비단 방송분야만이 아니다.
미디어법에 반대만 하는 논리
반대를 위해서는 집단의 논리나 지향점도 팽개친다. 진보의 존재가치야말로 변화의 추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지금 이대로'를 고집한다. 보수와 입장이 뒤바뀌어도 한참이나 바뀌었다. 이유는 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변화)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퇴보"라는 것이다. 그 판단이 자신들 입장에서는 전적으로 타당할지 모르지만, 변화를 바라는 쪽에서 보면 기득권 지키기의 구실에 불과해 보인다.
반정부적 태도와 이기심에 사로잡히다 보니 그들은 기존 언론학의 이론까지 뒤집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채널이 늘어나면 오히려 여론다양성이 줄어든다." "정권으로서는 민영방송체제가 공영방송체제보다 장악하기 쉽다." "소수의 특혜 받은 방송이 소비자(시청자)에게 더 좋고, 많은 혜택을 주며 경쟁력도 높다."
정부의 미디어법 개정안을 보면 물론 그럴 개연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10%의 지분으로 대기업과 거대 신문이 얼마든지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생리상 대기업은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하고,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일부 보수신문들은 지금의 정권과 밀착돼 있다.
그렇다고 채널의 다양성, 원소스 멀티유즈의 시대에 미디어 콘텐츠의 효율적인 활용까지 막무가내로 막겠다는 것은 억지다. 어떤 측면에서는 역으로 방송도 신문시장에 진출해 콘텐츠 활용도를 높이고, 점점 추락하는 신문시장의 활성화와 여론의 다양성에 이바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콘텐츠도 콘텐츠 나름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보수신문들의 뉴스 콘텐츠야말로 백해무익하다고. 여론을 호도하고, 가치를 왜곡하며, 반민주적이고 파당적이어서 널리 유통될수록 국민들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그렇다면 신문보다 더한 독과점 구조에서 지상파TV가 시장을 장악한 채 PD저널리즘과 막장 드라마로 여론을 호도하고, 시청자들의 정서와 가치관을 마구 해치는 횡포는 어떻게 봐야 하나. 여당의 미디어 관련법 강행 처리에 대해 일방적 비판만을 쏟아낸 토론회를 장시간 뉴스로 내보낸 MBC를 균형 잡힌 '공영방송'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공영방송제도야말로 특히 MBC에게는 엄청난 특혜다. 여론 독과점과 상업성을 마음껏 추구하면서, 그것에 시비를 거는 대상에게는 언제든지 공영이란 칼을 들이댈 수 있다. 걸핏하면 시청자를 볼모로 파업을 벌이는 것도 그 특혜를 잃기 싫어서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MBC에게 정명(正名)이 뭐냐고 거듭 물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시대 우리의 미디어산업 구조는 다채널, 다매체, 매체융합 쪽으로 가야 한다.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 단독처리가 적법이냐, 불법이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결과에 관계없이 지금부터라도 방통위가 종합편성채널 선정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비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물론 위험성도 꼼꼼히 따져야겠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시대적 흐름인 변화까지 거부한 채 사사건건, 사소한 것에까지 시비를 걸며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진보의 역할은 아니다. 시비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이지 내 것은 전부 옳고, 너의 것은 전부 틀리다는 말이 아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자신이 누려온 이익도 어느 정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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