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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8> 대의제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에이프릴 카터 '직접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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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8> 대의제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에이프릴 카터 '직접행동'

입력
2009.07.2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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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터 교수 이메일 인터뷰

정기적인 선거에 의한 권력교체,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감시, 독립적인 언론을 통한 의사표시 등 대의민주제는 17세기 이래 인류가 발전시켜온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모델이다.

국가에 맞선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 옹호라는 민주주의 제1의 가치 역시 의원을 통한 입법이라는 대의민주제 시스템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제도를 옹호하는 이들의 견해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크다. 대의민주제를 절차적으로 완성했다고 자평하는 우리 현실은 어떤가.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비의회적 방식'에 물들어 외신의 웃음거리가 되고, 낮은 투표율은 대의민주제에 대한 회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호주 퀸즐랜드대를 거쳐 현재 영국 코벤트리대 평화와화해연구소 명예 연구교수인 세계적 정치사회학자 에이프릴 카터(72)는 <직접행동> (2005)에서 파업과 불매, 점거, 시민불복종과 같은 방식으로 권리를 요구하는 '직접행동'이야말로 이런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민주주의의 실질성을 담보하는 유력한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대의민주제와 직접행동은 대립적인 것인가?" "직접행동은 언제나 정당화될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세계화와 직접행동의 관계는 어떤가?" 등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핵심 주제들은 바로 당대, 우리의 문제이다. 이메일 인터뷰로 카터 교수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 민주주의의 결손이 원인

"대의민주제는 일반 유권자들로부터 유리돼 영구적인 지배력을 발휘하는 엘리트정치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대의민주제를 작동하게 하는 유권자들의 투표행위는 '사회적 정의'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대의민주제는 단지 법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제도일 뿐이지요. '민주주의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명백히 한계가 있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직접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대의민주제가 내포하고 있는 한계를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그는 이를 '민주주의의 결손'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우선 대의민주제의 근본은 시민의 정치적 평등을 담보할 수 있는 공정한 선거이지만, 대의민주제도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들어 이 공정성이 위협당하고 있는 현실을 주목한다. 부유층과 대기업에 유리하게 편향돼있는 선거과정이 문제다.

예컨대 어마어마한 선거자금이 들어가는 미국의 개방형 경선제도는 특혜정책을 위해 정치자금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이 기부액수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구조를 고착시켰다.

유럽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자금 규제가 엄격한 독일에서도 불법정치자금 스캔들이 불거지고, 유럽연합의 공식 관료조직이 기업가들과 함께 정책을 입안하는 경우도 있다. 정계의 지도급 인물들이 마피아와 결탁해있는 이탈리아처럼 체계적인 부패도 민주주의의 규칙을 왜곡한다.

저자는 이런 요소들이 선거에 대한 대중들의 무관심, 정치에 대한 냉소를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그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카터 교수는 특히 빈곤층, 사회적 약자들이 개인적인 무력감의 표시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지는 점을 우려한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배제당할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 중요한 문제들이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에 대의민주제에 회의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정치적 대응성'의 지체야말로 사회운동과 항의운동 같은 직접행동의 유효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최근 이란사태는 민중들이 그들의 요구가 왜곡됐을 때 얼마나 격렬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대의민주제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여부는 그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합니다."

● 세계화로 직접행동 반경 증폭

직접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카터 교수는 직접행동에 나선 이들의 권력관계와 도덕성이 그 요인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차별당하거나 기본적인 인권이 유린되는 여성이나 이주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위한 직접행동은 정당성을 갖는다.

'공동선'이라는 가치도 행동의 정당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베트남전이나 이라크전에 대한 반전운동은 이런 맥락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한편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직접행동의 반경을 넓혀줄 것이라고 그는 내다본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민주주의의 결손, 부와 정치적 수단의 불평등, 기본권 옹호의 문제를 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경제기구의 의사결정 과정은 대부분의 대중의 이목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초국적 반대운동은 정당하며,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진 다국적기업에 반대하는 초국적 운동 역시 빈곤계층, 극빈층의 근본적 인권의 수호라는 지점과 긴밀하게 연관이 돼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그렇다면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표출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한계는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운동' 이후 확산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직접행동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일까. 그는 답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런 행동들이 영향을 주었는지 아직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국제적 비정부기구(NGO)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각 지역의 직접행동들이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왔다는 점이지요.

물이나 전기 같은 공공재를 사유화하려는 다국적기업이나 댐 건설을 지원하려는 국제금융기구가 지역민들의 항의를 받고 이를 철회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모든 직접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직접행동은 민주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도구입니다."

책을 번역한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직접행동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적 대의민주주의를 거부하거나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성을 초월하여 '실질성'을 강화하고, 민주주의의 기표만이 아니라 그 기의를 더욱 풍부하게 재구성하려는 것"이라며 "직접행동 민주주의 이론을 최초로 다룬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한국 민주주의 어디로 가야하나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절차적 민주화의 달성이라는 결과물을 성취한 한국사회.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나타나는 패거리 정치, 권력과 유착된 시민단체,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정당 등 한국 민주주의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에이프릴 카터의 <직접행동> 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당정치를 정상화해 대의민주제를 성숙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사회운동의 강화로 민주주의의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운동권의 반(反)정당적 정서를 비판하고 '정당정치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최근 펴낸 <민중에서 시민으로> (돌베개 발행)에서 "정치의 중심이 운동권이 주도하는 거리투쟁으로부터 민주주의 제도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선거경쟁의 장으로 이동했을 때, 운동권적 문화와 정향은 반정치ㆍ반정당적 성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고 운동정치를 비판했다.

그리고 "정당정치가 민주주의의 정치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제도정치는 사회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며 '운동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최근 비정규직 문제가 제도정치에서 주요한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현재 한국의 정당정치는 사회운동으로 표현되는 대중의 요구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지 못한 불구의 상태"라며 "우리의 사회적 갈등과 사회적 요소를 폭넓게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정당정치가 성숙할 때까지 운동정치의 필요성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4ㆍ19나 6ㆍ29 같은 운동이 없었으면 한국민주주의의 발전이 불가능했을 것이지만, 제도의 성장이 운동의 공간을 넓혀줄 수 있는 상보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를 대립적으로 보는 것은 정치의 역동성을 포착하지 못하는 관점이며 이 둘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결합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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