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8일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에 불을 지피고 나섰다. 미디어법 처리의 후폭풍을 의식한 민생 행보의 일환이다. 하지만 '근본 대책 마련'이라는 총론에 걸맞은 각론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다. 법 개정 유예안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두고 혼선이 일면서 스스로 국민적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은 일단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에 대한 입장 변화를 분명히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 "비정규직법 유예안에 집착하지 않겠다"며 "당내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해 법 시행을 1년 6개월 유예하는 것만이 '100만 해고대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임을 강조하던 것과는 간극이 상당하다.
이 같은 입장 변화에 대해 안 원내대표는 "이미 법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법 시행을 우리가 중단시킬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환노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1년이든 1년 6개월이든 유예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1일부터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줄곧 1년 6개월 유예안을 주장해왔던 것과는 맥락이 다른 얘기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염두에 둔 근본 대책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개정안을 새로 마련할 생각이지만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주장을 제한 없이 검토할 것"(정책위 핵심관계자)이란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개략적인 논의 내용은 잡혀 있다. 조 의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촉진과 차별시정 조치 강화 등 크게 두 축"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시 정부 지원을 강화하고, 현행법에 규정된 차별시정 조치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일본이 실시 중인 의무고용비율제도 도입이나 4대 보험 가입 의무화 등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사실상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간 여야 사이에 수없이 논의돼온 방안들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근본 대책 운운한 것에 발목 잡힐 수 있다"(환노위 소속 한 의원)는 지적이 나왔다. 비정규직 문제의 이해당사자인 경영계와 노동계가 각각 사용기간 철폐, 사용 사유 제한을 주장함으로써 절충의 여지가 거의 없는 만큼 결국 어느 한편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텐데 이 경우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1년 6개월 유예안에 대한 지도부의 행보에 대해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이미 법이 시행되고 있어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음을 인정해놓고 뒤늦게 기자회견을 자청해 "유예안을 포기한 건 아니다"(안 원내대표)고 강조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무리하게 비정규직법 얘기를 꺼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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