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가교육과학자문회의는 국민대토론회라는 이름의 공청회를 통해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을 제시하였다. 교육계의 중지를 모아 확정한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이 이제 막 출발점에 있는데 불쑥 미래형 교육과정이 등장한 것이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중학교 1학년의 새 교과서는 이미 검인정 과정을 마쳤고, 현재 중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 집필이 중단되는 등 교육현장이 혼란에 빠졌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시행도 해보기 전에 폐기하려고 하는 상황은 교육에 대해 새로운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정부의 조급한 욕심에 일부 교육학자가 편승하여 만들어 낸 결과이다. 현란한 수사로 장식된 미래형 교육과정의 내용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동안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늘 거론되었던 문제이고, 그 현실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제기된 내용이다.
학습부담 더 커질 위험
미래형 교육과정이란 무엇인가. 현란한 수사를 빼고 알맹이만 보자. 그 핵심은 학생의 학습부담 감소와 학교의 자율성 강화이다. 학습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이수 과목 축소를 제안하고 있다.
과연 우리 중ㆍ고등학생들이 많은 교과목 때문에 학습부담을 느끼고 있는가. 학습부담을 느끼는 것은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기초 영역으로 분류된 영어와 수학 과목 때문이다. 현재 이수과목이 많은지 여부는 차치하고 우리의 교육 현실로 볼 때 이수 과목을 줄일 경우 오히려 영어, 수학에 대한 학습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영어,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학교의 자율성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누구나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어느 학교장과 교사가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나는 수도권 중등학교의 지역대표 운영위원으로 10년 넘게 참여하고 있는데, 학부모의 가장 큰 관심은 자녀들의 입시성적에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학업성취도 측정, 수능시험 결과 공개 등은 이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청에 보고하는 교육과정과 실제 수업이 다른 비교육적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학습 이수시간이 적은 과목은 시간을 몰아서 '집중 이수제'를 시행한다고 한다. 한문 음악 미술 등 이수시간이 적은 과목의 집중이수가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이들 과목에 관한 한, 누룩으로 술을 빚듯 숙성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러 학기에 걸친 수업을 통해 숙성과 발효가 이루어지고 학생은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 풍토 개선이 먼저
도덕 교과가 중요 필수과목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한국 교육에 대해 내가 만난 외국의 많은 교육 관계자들은 놀라고 부러워했다. 그들은 이제야 사회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도덕교육을 중요한 독립과목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육의 근본적 문제점은 교육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풍토와 사회 풍토에 있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구조적 개선책은 없이 현실성 없는 탁상이론만 난무한다면 우리의 교육계는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다.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이 결코 교과 이기주의로 매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방영준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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