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는 서울 신당동의 김모(36ㆍ여)씨 부부는 최근 부부가 번갈아 정기 휴가를 내고 병원에서 꼬박 밤을 샜다. 돌이 막 지난 아이가 갑자기 고열을 일으켜 한밤 중에 병원 응급실을 찾아 5일간 입원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김씨 부부에게 다른 대안이 없었다. 부모님은 경남 창녕에 사시고 간병인을 급하게 구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김씨 부부의 여름 휴가는 이미 반토막이 났다. 김씨는 "회사 인사과에 알아보니 가족이 아플 경우 3개월 이상 휴직은 되지만 단기 휴가는 없다고 했다"며 "이번 여름 휴가는 간병으로 끝낼 수밖에 없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맞벌이 부부에게 황금 같은 여름 휴가철이지만, 가족이 아프기라도 하면 간병 하느라 휴가를 다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에는 가족간호휴직제가 규정돼 있으나 유명무실한 상태여서, 짧게 쉬면서 가족을 돌볼 수 있는 휴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족간호휴직제는 "핵가족 시대 가족 보호"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지난해 6월 도입됐다. 그러나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제도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근로자가 가족의 질병, 사고, 노령 등을 이유로 그 가족을 돌볼 필요가 있는 경우 사업주는 가족간호휴직, 근무시간 조정 등 조치를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구 그대로 권고 사안일 뿐이어서 실제 시행 기업은 극소수다. 주무 부처도 보건복지가족부와 노동부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몇 개 기업이 이를 도입했는지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이를 도입한 일부 기업들도 대부분 3개월 이상의 '무급' 휴직으로 처리해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 지난해 이 제도를 도입한 K사의 경우 지금까지 이용자가 한 명도 없었다.
중풍으로 누워있는 80대 시아버지를 모시는 황모(43ㆍ여)씨는 "월급 못 받고 아버님을 직접 돌보는 것보다 차라리 월급을 타서 간병인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휴직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아이들 병치레가 잦은 맞벌이 부부에게도 며칠간의 간병이 절실하지 장기간 휴직은 비현실적이다. 공무원의 경우 가족간호휴직제를 1995년부터 '가사휴직'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고 있으나 이를 사용한 공무원은 지난해 401명에 불과했다.
결국 가족 간병을 위해서는 여름 휴가 등 정기 휴가를 쪼개 쓰거나 돈을 들여 간병인을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세 살 배기 아이를 둔 홍모(33)씨는 "아이 간병으로 여름 휴가를 모두 당겨 썼는데, 휴가를 못 간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쑥 빠진다"며 "애 아플 때 연차 휴가를 내고, 여름 휴가를 따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간 큰 직장인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익중(40)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린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휴직보다는 휴가가 훨씬 현실성 있는 제도"라면서 "더 중요한 것은 눈치 안보고 제도를 필요에 맞게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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