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황금 지분율을 유지하며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여왔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형제간의 경영 분쟁으로 결국 파국을 맞았다. 그룹의 운명을 가를 핵심 계열사 매각을 앞두고 상황에서 닥친 적전 분열이라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불신으로 막 내린 형제경영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동반 퇴진으로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아들인 첫째 고 박성용 명예회장과 2남 고 박정구 회장, 3남 박삼구 회장으로 이어진 형제경영 전통은 막이 내렸다.
박 회장은 28일 퇴진 기자회견에서 "유고 시 내부 전문경영인이나 덕망 있는 외부인사를 영입해 그룹을 이끌기로 이미 선친과 형님들인 선대 회장들간의 합의가 있었다"며 "금호 형제경영에서 65세 룰(만 65세가 되는 해에 동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형제라고 아무나 (경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이상 형제경영은 없다는 선언이었다.
이런 극단적 조치가 나오게 된 데는 형제간의 불신이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 박삼구 회장 측은 박찬구 회장이 향후 그룹 지주회사가 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집중 매집한 것이 형제간의 지분율 약속을 어긴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박찬구 회장 측은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을 무리하게 인수해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난한다. 양측 모두 상대방의 잘못으로 그룹이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추진중인 계열사 매각은
오너 선장을 잃었지만 금호생명, 대우건설, 강남터미널부지 매각 작업은 별 차질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금호생명은 매각이 상당 수준 진행된데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매각을 빨리 마무리 지을 것을 주문한 상태라 더 지체하기 어렵다. 금호생명 측도 "매각 주간사와 매각협상이 거의 막바지에 달한 만큼 주주 권익 보호차원에서도 매각작업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을 되파는 것도 향후 그룹 유동성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치도 시간을 끌 수 없다. 박삼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 재무구조 개선작업에서 맡은 바 책무를 다하겠다"고 밝힌 것도 대우건설 매각 등 그룹 유동성 개선에 관여하겠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금호그룹의 운명은
박삼구ㆍ찬구 회장의 동반 퇴진으로 표면적인 경영권 분쟁은 잦아들게 됐지만 실제 경영권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우건설을 매각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는 금호산업에서 금호석유화학으로 넘어간다. 현재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박찬구 회장 측이 18.47%로 박삼구 회장 측(11.77%) 보다 많다.
그룹 경영권 싸움이 전개될 경우 박찬구 회장 측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다. 따라서 향후 경영권은 11.76%를 보유하고 있는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부장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박철완 부장은 지금까지는 박삼구 회장과 뜻을 같이 해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당분간 박찬법 그룹 회장을 축으로, 박삼구 명예회장 측이 뒷받침하는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오너체제와 전문경영인 체제가 상호 공존하는 셈이다.
오너경영 체제로의 복귀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박 회장이 "박찬법 회장이 그룹을 잘 이끌어 갈 것이며, 오래 하실 것이다"고 말했지만 3세 경영 등 총수 일가의 오너십 포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다. 계열사 매각 등 추진중인 재무구조 개선작업이 마무리 되고 경영이 정상화되면 총수 일가 형제들이 다시 경영일선에 나설 수도 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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