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 된장과 깨묵, 콩가루를 조금씩 넣어 손으로 버무린 후 큼직한 사발에 담는다. 가운데 소주 병뚜껑 만한 구멍을 뚫은 삼베나 무명 헝겊으로 대접을 덮고 고무줄로 동여맨다. 물살이 잔잔한 깊은 곳까지 걸어 들어가 살며시 대접을 냇물 바닥에 내려놓는다. 한참을 딴 곳에서 놀다가 돌아와 보면 대접 속에 물고기 10여 마리가 갇혀 있다. 먹이에 끌려 들어갔다가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법하지만 그렇게 꾀 있는 물고기는 많지 않았다. 40년 전에 벌써 어른들은 유리 어항을 썼지만, 아이들은 '사발 어항'을 만들 밥을 얻는 것만도 복이었다.
■갖가지 다른 방법도 동원됐다. 퉁가리 가족이 틀어박혀 사는 돌 아래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돌과 함께 들어올리고, 피리나 꾸구리가 몸을 숨긴 돌을 커다란 돌이나 쇠망치로 내리쳐 기절시켰다. 적당한 방향에 반두나 족대를 치고 쇠막대기로 바위를 흔드는 2인1조의 족대질이 가장 신났다. 잡은 물고기는 껍질을 벗긴 버들강아지 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두었다. 쉬리나 피리 납자루 등은 금세 죽기 때문에 아예 배를 따고 씻어서 바위 위에 놓고 살짝 말렸다. 밀가루 옷을 입혀 튀겨 먹거나 꺽지나 퉁가리, 꾸구리, 모래무지, 종개, 쌀미꾸리 등과 함께 끓여 먹었다.
■바닷가 사람들은 민물고기 매운탕은 흙내가 나서 거북하다지만, 냇가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별미다. 더구나 상류로 올라갈수록 흙내는 줄어들고 동물성 단백질의 진한 맛이 늘어난다. 시골에는 어느 동네 물고기 맛이 어떠니, 어디 물고기가 제일 낫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지금도 돈다. 그런데 여름철이면 으레 천렵놀이에 따라 나섰던 아이들이 천렵은 제법 즐기면서도 매운탕에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떠올리기만 해도 입에 침이 괴는 민물고기 매운탕 맛은 물고기 자체의 맛보다는 추억이라는 진한 양념 맛 때문이었던 것일까.
■그러나 <농가월령가> '4월령'의 한 대목을 읽으면 잠시의 낙담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촉고를 둘러 치고/ 은린 옥척 후려내어/ 반석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 오후청을 이 맛과 바꿀소냐.' 맑은 냇물에 촘촘한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아, 바위에 솥을 걸고 펄펄 끓여먹는 매운탕 맛이 천하진미보다 낫단다. 과장 섞인 옛사람들의 자랑에 힘입어 올 여름 휴가 때도 아이들을 데리고 한적한 산골로 천렵놀이나 떠날까 보다. 농가월령가>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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