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e-북) 활성화를 가능케 할 '묘약'으로 출판계의 기대를 모아온 삼성전자의 '전자종이 단말기 SNE-50K'가 31일 출시된다. 영세ㆍ중소업체들이 주도했던 전자책 시장에 삼성전자가 뛰어들어 국내 최대 도서유통 업체인 교보문고와 손을 잡으면서, 그간 부진을 면치 못했던 전자책 시장에 어떤 변화가 올지 많은 관심을 모았다. e-북이 국내 도입된 지 10년, 전자 분야의 마지막 황무지, 출판계에도 디지털의 훈풍이 불 수 있을까.
■ 삼성전자 "진짜 책에 가장 가깝다"
삼성전자와 교보문고는 27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SNE-50K의 시연회를 가졌다. '파피루스'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진행된 삼성의 전자종이 디스플레이 사업의 첫 결실인 SNE-50K는 독서와 일정관리, 메모 저장 등이 가능한 다기능 전자책 단말기.
512MB 메모리를 내장, 책 400권 또는 8,000장 분량의 메모를 저장할 수 있으며, 포켓 사이즈인 5인치의 작은 화면에 한 손으로 오랜 시간 잡고 있어도 무리가 가지 않도록 무게 200g으로 가볍게 제작됐다.
전자종이를 사용해 햇빛과 조명을 받으면 액정이 반사돼 글을 읽을 수 없었던 기존 전자책들과 달리 실내ㆍ외 어디서나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며, 세계 최초로 실제 종이에 메모하듯 전용 펜으로 자유롭게 메모할 수 있는 라이팅(writing) 기능을 탑재, 별도의 메모장과 스케줄러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 직접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할 수 있는 기능은 아직 구현하지 못한다.
컴퓨터와 연결해 디지털 교보문고(www.dkyobobook.co.kr)에 접속, SNE-50K 전용 페이지에서 도서를 구매하면 콘텐츠가 SNE-50K로 전송되는 방식. 무선 인터넷 기능이 없어 매번 PC에 접속해 책을 내려받아야 하는 점이 불편하다. 단말기는 33만 9,000원, 전자책 가격은 종이책 값의 40% 수준. 31일부터 인터넷 교보문고와 교보문고 매장에서 살 수 있다.
■ 그동안 왜 거듭 실패했나
2000년대 초 국내에 도입된 전자책은 플랫폼의 변화에 따라 PC용 시스템, 전자도서관, 모바일 전자책, 전용 단말기 순으로 그 형태를 달리해왔다. 하지만 고질적인 콘텐츠 부족과 가독성 낮은 플랫폼 등으로 인해 어느 하나 성공적인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실패를 거듭해왔다.
국내 최대 전자책 전문업체인 북토피아가 지난 6월 사실상의 부도 사태를 맞은 것이 대표적 실패 사례. 북토피아는 1999년 김영사, 들녘, 박영사, 푸른숲 등 120개 출판사와 주요 작가들이 주주로 참여해 설립된 벤처회사로 전용 뷰어인 '내 서재' 등 이용하기 편리한 프로그램과 다양한 콘텐츠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경영진의 경영권 갈등, 방만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잦은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로 1,063개 출판사에 약 60억원의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못한 채 신간 제공 서비스를 종료했다.
국내 전자책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은 건 읽기가 어렵고, 읽을 게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 2007년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출시한 전자책 전용 단말기 '킨들'이 돌풍을 일으키며 주요 작품 대부분이 전자책으로 출간되는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성대훈 교보문고 디지털콘텐츠사업팀장은 "그동안 전자책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건 콘텐츠를 최적의 조건에서 디스플레이할 수 있는 적절한 단말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 확립, 시장 질서의 미정립도 심각한 문제점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인세 등 수익 배분에 관한 업계의 합의된 룰이 없어 그때그때 중구난방이었고, 전자책으로 데이터베이스화된 콘텐츠는 불법 복제에 악용될 소지가 커 작가나 출판사들이 전자책 출판을 기피해 왔다"고 말했다. 전자책의 '범람'으로 인한 시장 축소와 단가 인하에 대한 출판사의 우려도 전자책 활성화를 막는 원인으로 꼽힌다.
■ 이번엔 잘될까
지난해 출시된 국내 최초의 전자책 전용 단말기인 네오럭스의 누트와 이번에 출시되는 삼성전자의 SNE-50K는 전자종이와 전자잉크의 사용으로 눈의 피로와 빛 반사 등 디지털 독서의 가독성을 높이는 데 성공, 기술적 과제는 상당 부분 해결했다. 이제 전자책의 운명은 얼마나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보문고가 단말기 출시와 동시에 제공하는 전자책은 SNE-50K가 채택한 국제전자책표준포맷인 이펍(ePub)으로 변환된 2,500여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이긴 하지만 종이책과 비교하면 여전히 빈약한 규모다.
<압구정 다이어리> <88만원 세대>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이노베이터> 등 분야별 베스트셀러도 포함하고 있으며 올해 연말까지 1만종, 이후 매년 1,000여종씩을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이노베이터> 심리학이> 압구정>
교보문고 이한우 온라인사업본부장은 "신제품 출시로 전자책 독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자책 콘텐츠 판매도 5배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디지털교보문고는 국내 전자책 시장이 2006년 약 2,100억원 규모에서 2010년 1조600억원, 2012년 2조3,8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기호 소장은 "저작권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없어 저자, 출판사 등 생산자가 전자책에 대해 아직도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생산자부터 동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이 정립되지 않는 한 전자책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단말기가 출시돼도 별 영향은 없으리라고 본다"며 "장기적으로 전자책은 전용 단말기가 아닌 휴대전화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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