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투명경영.'
한국투자증권의 최우선 덕목이다. 고객의 돈을 굴리는 증권사니 당연한 선언 같지만 세밀한 실행은 쉽지 않은 법. 가뜩이나 바쁜 직원들을 강제 동원해 표어 몇 마디 외치게 하고 어색한 기념촬영으로 마무리해선 결코 얻을 수 없는 가치다. 더구나 지난해 금융위기 여파로 증권사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바닥을 나뒹굴지 않는가.
그런데 한국투자증권의 투명경영 전략엔 질박하지만 진솔함이 스며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1 승진은 모든 직장인의 숙원. 증권사에선 업무능력과 전문지식이 첫머리에 나서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한국투자증권이 1년마다 한번씩 치르는 시험(금융실무 향상과정) 교재의 1장은 뜻밖에도 '윤리강령 및 윤리행동지침'이다. 승진 및 고과에 반영되는 주요 시험인 터라 구성원들은 자연스레 투명경영의 실천사항을 속속들이 습득하게 된다.
#2 명절 선물정도는 업계의 미풍양속쯤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한 게 현실. 한국투자증권은 오히려 먼저 협력회사에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윤리경영 협조요청 안내문도 함께 동봉한다. 회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대가성 선물이나 향응 등을 미리 막기위한 알뜰한 방법이다. 그런 구닥다리가 통할까 싶지만 효과 만점이다. 2006년엔 공을 인정 받아 거래소로부터 상(우수 컴플라이언스 회원사)도 받았다.
이밖에도 소소한 실천사항은 많다. 윤리강령 액자를 걸고, 윤리강령 핸드북을 나눠주고, 8차에 걸친 온라인 교육(내부통제제도 및 윤리준법)도 받아야 하며, 모든 교육교재 첫 페이지는 무조건 윤리다. 싫든 좋든 '윤리'와 더불어 살게 되니 시나브로 실천이 몸에 배는 것이다. 무릇 거창한 구호보다 자잘한 실천이 모여 대의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살벌한 구석도 있다. 회사 홈페이지, 사내 게시판 및 전화사서함 등을 감시의 눈으로 둔 윤리위반신고센터가 그렇다. 내부 직원뿐 아니라 외부 고객도 자유롭게 회사 내부의 부조리나 위법 사실 등을 제보할 수 있다. 그러나 방점은 통제가 아닌 조기개선에 찍혀 있다.
물론 실천만으로는 2% 부족하다. 완벽한 시스템이 받쳐줘야 비로소 윤리경영은 완성되기 때문이다. 펀드 사후관리가 대표적이다. 제아무리 도덕적으로 투명해도 원금을 까먹은 투자자들의 원성 앞엔 백약이 무효이니 세심하게 다듬어야 할 부분이다.
'자산관리 리뷰'(Daily Review)로 명명한 펀드 모니터링 시스템은 꼼꼼하다. 먼저 매일 지뢰 찾기(수익률 점검)를 한다. 상대수익률이 1.5%, 절대수익률은 5.0% 차이가 나는 펀드를 발견하면 당장 해당 부서에 알리고 원인분석에 나선다.
때에 따라선 운용사가 직접 실적 부진에 대해 프레젠테이션(PT)을 하게 한다. PT는 운용사 입장에선 진땀 나는 고역일 터. 수익률이 계속 나쁘면 결국 해당 펀드는 판매가 중지되고, 환매 유도 조치에 나선다. 우수한 펀드는 권하고 쭉정이 펀드는 솎아내, 고객의 돈을 적극적으로 지켜 신뢰를 얻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보상기준 및 절차가 명확한 것도 시스템의 일부다. 일상적인 민원을 해결하는 민원사무처리지침 외에 온라인거래 장애발생 등 각종 예기치 못한 문제들에 대한 뚜렷한 해법도 쉬지않고 다듬고 있다. 실질적인 감사활동을 위해 감사위원회는 사외이사 2명과 상근감사 1인으로 꾸렸다.
촘촘한 윤리경영의 틀은 올해 취임 3년차를 맞은 유상호 사장이 짰다. 그의 올해 경영방침은 '제2의 도약을 위한 Back to the Basics.(기본으로 돌아가라)' '최고의 국제통'이란 별명에 걸맞게 직원들에게 해외 유명기업의 윤리경영 실패사례를 전파해 기업윤리가 기본이 돼야 한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전임직원들은 4월 준법서약서 제출로 유 사장의 뜻에 화답했다.
유 사장은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민첩하게 달라져야 하는데, 변화의 핵심은 윤리경영 강화"라고 했다. 윤리경영을 생존과 연결시킨 대목이 인상적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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