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태국 푸껫에서 끝난 16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했던 한국 미국 북한 대표단은 나름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얻었다. 자신들의 구상은 뽐내고 상대는 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북한은 외톨이 신세를 절감해야 했고 한미 양국의 '포괄적 패키지' 협상 방안은 초반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외톨이 신세 北
21일 푸껫에 도착한 북한 대표단은 은둔 행보를 이어갔다. 이번 ARF 주최국인 태국 측 면담을 제외하곤 양자 접촉도 거의 없었다. 정부 당국자는 24일 "ARF 본회의에서도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핵실험을 비난하고 유엔 안보리 1874호 제재 결의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북한 대표단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북한이 외교적으로 외톨이 신세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북한은 ARF 의장성명에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 당국자는 "ARF 의장성명은 원래 회의의 발언을 종합하는 성격이고 태국이 북한의 체면을 살려 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안보리 1874호 부정, 한반도 미군 주둔 비판 등 북한 입장이 성명에 그대로 담겼다. 또 핵 협상에서 북미 양자 구도를 형성하려는 목표도 일정 부분 달성했다.
망신살 뻗친 美
이번 ARF의 최고 스타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었다. 그의 발언 한 마디 한 마디에 현지 취재진과 전 세계 외교가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6자회담 참가국 및 동남아 각국과의 연쇄 회동은 미국의 외교력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클린턴 장관은 "미국이 아시아에 돌아왔다"며 전임 부시 행정부 당시 소홀했던 아시아 외교 복원을 강조하는 성과도 거뒀다. 또 포괄적 패키지안을 이슈화해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과시했다.
물론 북한을 '관심 끌려고 보채는 꼬마이자 철부지 10대'라고 비꼰 덕분에 23일 '소학교 여학생, 할머니' 등으로 묘사되며 북한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북한이 "말도 안 되는 문제"라며 포괄적 패키지안을 일단 거부한 것도 부담이긴 하다.
존재감 미미했던 韓
한국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잇따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그동안 부르짖어 왔던 '5자협의'를 사실상 완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국제 여론을 확인했다.
하지만 북한 핵 문제가 북미 간 대결로 흘러가는 양상은 부담이다. 두 나라는 ARF 회의장 안팎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기싸움을 이어갔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느낌이었다. 의장성명에 북한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부분도 책임론이 일 수 있다.
푸껫(태국)=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