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 로저스 지음ㆍ이수영 옮김/삼인 발행ㆍ360쪽ㆍ1만4,000원
우주에서 맨눈으로 지구를 볼 때 눈에 띄는 건 흔히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뿐인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미국 뉴욕시 남서부 끝에 있는 프레시 킬스 쓰레기 매립지다. 과거의 소비가 뿜어내는 메탄의 악취로 가득한 이곳은 그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제 쓰레기가 인류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임을 선언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영화제작자인 헤더 로저스의 <사라진 내일> 은 미국 가정쓰레기의 행로를 좇으며 우리가 친환경적이라고 믿고 있는 쓰레기 처리 방식들이 실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폭로한다.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난 후 못다한 이야기들을 담은 이 책은 매립, 소각 등 다양한 방식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집중 조명하는 건 재활용. 수고스럽게 분리수거를 해봤자 재활용 쓰레기는 재활용되는 대신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되기 때문이다. 사라진>
2000년 현재 미국은 알루미늄 54%, 유리 26%, 종이 40%, 플라스틱 5%만을 재활용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곧바로 소각로나 매립장으로 보내 처분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유는 시장성에 있다. 대부분의 물질은 재처리 과정에서 분자의 완전성을 잃기 때문에 쓸 수 없게 된다. 녹인 유리는 재처리가 거듭될 때마다 기능과 내구성이 떨어지고, 합성제품은 혼성에 매우 민감해서 종류가 조금만 다른 수지가 섞여도 재료를 모두 버려야 한다. 무한 순환할 것 같은 재활용 마크, 세모꼴 화살표는 실상 순환하지 않는다.
재활용은 용어 자체의 허위성뿐 아니라 매립이나 소각과 달리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천연자원이 소비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게다가 지역적으로 소비하고 지구적으로 버리는 쓰레기 수출은 도덕적 책임이라는 문제까지 야기한다. 세계 인구의 4%가 지구 자원의 30%를 소비하며 만들어낸 미국의 쓰레기들이 바다 건너 인도나 중국 남미 필리핀의 극빈층 노동자들의 손에서 부숴지거나 분해된다.
그린피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외로 실려가는 플라스틱 폐기물의 50%가 부적절한 물질과 혼합되어 재활용될 수 없었고, 이들은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관리되지 않는 곳에서 결국 폐기됐다. 저자는 "버려진 전자제품을 재활용한다는 생각은 건전해 보일 수 있으나,현실은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가장 사악한 점은 재활용이 "우리는 친환경적"이라는 신화를 구축하며 소비 증대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쓰레기 생산자인 제조업에는 재활용되지도 못하는 소비재들에 마구 삼각 마크를 붙임으로써 '녹색 세탁'의 기회까지 준다. 그로 인해 "소비자들은 쓰레기는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매우 쉽게 믿어버리고, 자연의 참사는 추상으로 남는다." 우리는 재활용이라는 녹색 거짓말에 속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압도하는 이 쓰레기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저자는 "쓰레기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의 관점에서 이야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폐기물이 만들어진 뒤에 처리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먼저 폐기물을 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소비자 개인의 탓이라고 뒤집어씌우는 건 생산 과정에서 쓰레기가 양산되도록 조장하는 태도일 뿐, 참된 해결책이 아니다.
엄청난 쓰레기는 제품 포장과 제품의 수명을 짧게 설계하는 노후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대부분의 쓰레기는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다. 쓰레기를 생산해내지 않는 '쓰레기 제로' 구조로 사회를 재편해야만 한다. 버리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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