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그룹은 최근 은행ㆍ증권 복합상품인 'KB플러스타 통장'의 판매 호조로 잔뜩 고무돼 있다. KB플러스타 통장은 은행ㆍ증권 거래가 동시에 가능한 상품으로 지주사 출범 이후 내놓은 야심작인데, 출시 3개월 만에 21만좌를 돌파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덕분에 KB자산운용은 소매영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32만좌의 증권 거래 계좌를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6만명이 KB플러스타를 통해 거래를 튼 고객들이다. 이 때문에 증권 업계에선 "전국 최대 점포망을 갖춘 국민은행의 막강한 영업력을 등에 업은 KB자산운용의 성장이 무섭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중소기업 전문인 IBK기업은행은 최근 보험사 인수와 함께 지주사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우량 중소기업들을 고객으로 뒀지만, 대출 외에는 마땅한 투자 상품이 없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자회사인 IBK투자증권의 자산운용과 보험사 인수를 통한 퇴직연금시장에 진출, 일반 고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은행, 증권, 보험 간 상품 장벽이 무너진 상황에서 현 체제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지주사 설립을 통한 복합상품 개발로 민영화를 대비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되면서 국내 시중 은행들이 지주사 설립에 본격 나서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금융지주회사법 통과 등으로 금융환경이 급변하면서 지주사 설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 신한, 하나, 국민, SC제일은행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데 이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한국씨티은행도 올해 말까지 지주사 설립 준비를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외환은행과 지방은행을 제외한 대다수 시중 은행이 '금융지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확 바뀐 금융 환경에 대비
지주사 설립 붐을 일으킨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이다. 은행, 증권, 보험 간 진입 장벽이 무너지며 '크로스 오버' 상품 개발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 은행들이 전통적인 예대 업무에 따른 이자 수익 만으론 독자적으로 성장하기 힘든 구조가 된 것이다. 더욱이 최근 증권사의 CMA(종합자산관리계좌)를 통한 지급 결제까지 가능해지면서 은행들 입지는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은행 뿐 아니라 증권, 보험 업무를 연계한 복합상품 없이는 경쟁력 저하가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지주사 없이도 복합상품 개발은 가능하다. 문제는 대응 속도다. 금융지주그룹의 경우 지주사가 강력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며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개별 은행 체제는 이익 분배 문제가 불거질 경우 상품이 출시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금융지주회사법 통과로 지주사 설립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개정 지주회사법에 따르면 지금까지 지주사가 자회사에 출자할 경우 자기자본 범위에서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외부 차입을 통해서도 자회사 출자가 가능해졌다. 인수ㆍ합병(M&A)를 하더라도 그만큼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모 지주사 관계자는 "은행 인수 외에 보험사나 증권사 인수에도 상당한 부담을 덜게 됐다"며 "은행들이 지주사 설립을 통해 M&A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객 혜택은 미미
지주사 설립은 은행 입장에서는 몸집을 불리고, 안정적 수익기반을 만든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대안이다. 대표적인 곳이 신한금융지주. 2001년 지주사 전환 이후 조흥은행, LG카드, 굿모닝증권을 차례로 인수하며 국내 선두권 금융그룹으로 떠올랐다.
하나대투증권을 인수한 하나금융지주와 LG투자증권을 인수한 우리금융지주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케이스. 특히 은행에서 비은행상품 판매를 급격히 늘리며 수익성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실제 지주사들의 펀드, 보험 등 비은행상품 판매수익 비중은 3~4년 전 10%대에서 올해엔 30%대까지 늘었다.
하지만 고객들이 느끼는 혜택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주사 성장 속도는 빨랐지만, 은행-증권-보험 연계상품 개발은 게걸음을 걸었기 때문이다. 실제 4대 금융지주사를 보면 업종 간 벽을 허문 복합상품 개수가 전체를 합쳐 10여 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을 준비한다고 떠들썩했지만 정작 내놓은 상품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모 지주회사 관계자는 "묻지마 펀드 판매로 홍역을 치르고, 금융위기 여파로 보수적인 경영을 하면서 상품 개발이 지연됐다"면서 "최근 고객 전산통합 과정을 마무리 지은 만큼, 지주사를 중심으로 복합상품 개발이 활기를 띌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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