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경영학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재학 중 복수전공, 연계전공, 부전공 형태로 따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도 많다. 직장인들도 외국으로 MBA(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하러 가는 경우가 흔하고, 시간을 쪼개어 주말이든 야간이든 경영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사람이 많다. 경영학이나 MBA은 취직이나 전직을 하는 경우 몸값을 높이는데 유용하다. 이러한 인기는 우리 경제를 이끌고 갈 인재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학생들에게 경영학이나 MBA를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체로 '나은 신분과 높은 보수'를 위해서라는 대답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 한국 학생들은 MBA를 마치고 높은 연봉과 안정성이 보장된 대기업이나 금융권 등으로 진출하기를 원한다. 특히 외국 MBA 과정을 마치면 다국적기업에 둥지를 틀거나 금융권 펀드 매니저가 되는 것이 정해진 코스처럼 되었다.
그런데 과연 대기업과 금융권에 진출하는 것이 능사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 경제성장기에 산업역군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던 산업 일선 종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개념의 산업역군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공장이 아닌 고층빌딩으로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산업현장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신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스탠포드 MBA 졸업생의 절반 정도가 실리콘 밸리로 가서 창업을 하거나 벤처기업에 입사한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기업을 일으키기 위해 현장에서 자신의 지식과 열정을 쏟아 붓는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경영학 교육에서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강조하고 있으며, KAIST의 안철수 석좌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기업가(企業家)가 아닌 기업을 일으키는 '기업가(起業家)'를 키워 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MBA 과정을 마치고 창업을 한다거나 중소 벤처기업에 다니는 것을 일반적 상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MBA 개념은 도전보다는 안정을, 창업보다는 대기업 취업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적 선택과 가치관의 문제이겠지만 진정한 기업가나 산업역군이 줄어들 수 밖에 없어 안타깝다. 경제는 불안정하고, 미래는 불확실하고, 사교육비 등 가계부담은 가중되는 현실에서 선뜻 도전하기 힘들고, 또 도전한다고 해도 인식과 제도의 벽이 높게만 느껴지고 있다.
실례로 벤처기업에서 정책자금을 지원 받을 때 대표이사나 경영지배자 명목으로 그 기업에 대한 보증을 세우는데, 개인 인감을 동봉한 날인을 요구받는 순간 산업역군의 길이란 멀다 못해 섬뜩하게 느껴질 것이다. 매월 들어가는 자녀들의 학원비 등을 생각하면 비싼 MBA 등록금을 수입과 지출을 위한 보험으로까지 여기는 현실을 탓할 수만은 없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경제 살리기를 위한 각종 정책은 물론이고 진정한 산업역군이 꾸준히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데 공을 들어야 한다.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도 하지 않고 잔뜩 움츠린 상황일수록 외환위기 당시 벤처 붐 조성처럼 새로운 산업의 싹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영학을 공부하고 MBA 과정을 마친 많은 학생들이 기업가로서 도전과 열정을 불태우는 산업역군, 산업현장의 리더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양호 ㈜씨엘엘씨디 대표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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