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디르 벤카테시 지음ㆍ김영선 옮김/김영사 발행ㆍ392쪽ㆍ1만5,000원
"갱단 보스들은 저마다 개인 경호원을 데리고 다녔다. 이런 풍경은 갱스터 랩 뮤직비디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포츠카, 고급 트럭, 기다란 자줏빛 컨티넨털 자동차들은…"(142쪽) 흑인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의 정점이다. 그러나 대다수 흑인들은 언제든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는 팔자에 순응해야 한다. 모든 흑인들은 미국 주류 사회의 대척점에 있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달의 이면인 것이다. "경찰은 언제나 안 와."(247쪽) 미국 대도시 슬럼가의 주부가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송곳처럼 파고든다. 이 시대 미국에서 그들은 완벽하게 버려진 존재였다.
공부만 하고 자란 중산층의 대학원생은 갱스터 랩 같은 흑인의 삶을 파고들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10년간 그는 21세기 미국 속의 완벽한 무법지대를 탐색했다.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인도 태생의 사회학도 수디르 벤카테시(43ㆍ사진)에게 그래서 가장 진솔한 인간 드라마가 펼쳐졌다.
시카고에 있는 미국 최악의 빈민가인 '로버트 테일러 홈즈'에 사는 도시 빈민들은 살기 위해 코카인을, 몸을 팔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의 방식대로 매일매일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은밀하게 협잡해 빈민들의 간을 우려 먹는 갱단, 주민 대표, 경찰 등에 비한다면 그들은 차라리 선량한 시민이다.
개인 경호원을 거느리며 자줏빛 링컨 컨티넨탈 자동차에서 거들먹거리는 갱스터 랩 뮤직비디오 속의 부자가 그들의 역할 모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1950~60년대의 과격 흑인 민권 운동 단체인 '흑표범단'(Black Panther Party)의 정신을 공유한다. 코카인 밀매도, 가족 사진과 예수의 그림을 나란히 벽에 걸어놓는 거실 풍경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버성김 없이 공존한다. 백인 사회가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과 자존감이 그들을 받치는 한 그들은 온전한 공동체다.
갱단이 차량 총격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 벤카테시로부터 전해 들은 지도교수들은 그에게 변호사와 정식으로 상담해야 할 일이라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에 제동을 걸기까지 했다. 시카고대 대학원생으로서 결행한 그의 연구는 전형적인 학술 연구의 상식을 뒤엎었다. 생생한 연구를 위해 갱의 두목과 격의없이 지냈고, 윤락여성들과 심층 인터뷰도 했다. '사회학적 상상력'과 휴머니즘이 결합, 따뜻한 피가 도는 이 학술적 탐사 보고는 그래서 태어났다.
사실을 존중하는 사회학적 방법론은 그 요체다. 랩 문화의 현장, 매춘의 실상을 시시콜콜 기록하는 등 폭력에서 섹스까지, 현재 미국의 팝 문화를 가능케 한 흑인 문화의 실상이 포착돼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언젠가는 흑인 여성들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할 것이라는 꿈으로 차 있었던 여인이 만연한 총기 사고로 횡사하는 대목(285쪽)은 미국의 비극을 냉정히 전한다.
배짱과 의욕 넘치던 벤카테시는 2008년 출간한 이 책으로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등 여러 잡지와 방송을 통해 일약 유명인으로 떠올랐다. 현재 컬럼비아대 사회학 교수로 재직중인 그의 가장 큰 화두는 빈곤이다. 원제 '하루 동안의 갱 두목'(Gang Leader For A Day).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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