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락 지음/서해문집 발행ㆍ288쪽ㆍ1만2,900원
"미술의 가치는 반항과 불복종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미술과 권력이 만나는 접점에 초점을 맞춘 소략한 미술사다. 권력은 어떻게 미술을 지배하고 미술로 자신을 표현해 왔는가, 그리고 미술은 어떻게 권력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비판의 거울이 될 수 있었는가. 바로크시대 도시디자인부터 현대 행위예술 작품까지를 종횡하며 저자는 그 질문의 대답을 찾는다.
저자는 "(미술이) 인간의 총체적 사회활동에서 잉여가치 정도로 치부돼, 더 이상 작가가 되길 소망하지 않았던" 1980년대에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미술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현재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몇몇 대학에서의 강의 내용을 모은 이 책은 그가 "(미술의) 아름다운 가면 뒤에 숨겨진 참기 어려운 진리를 추론하고자" 노력한 흔적이다.
저자는 미술 작품의 가치를 희귀성이나 문화재적 중요성에서 찾지 않는다. 그가 미술을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생산물"로 규정하는 이유는, 오히려 "미술이 지니고 있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의 탁월함" 때문이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드 고야(1746~1828)와 오노레 도미에(1808~1879)에 대한 그의 평가를 보자.
"고야는 귀족적 화려함과 민중의 빈곤함을 모두 경험했다. 그는 삶의 아름다운 면만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스러운 상처에 붓을 댄 화가였다… 도미에는 정치적 내용을 판화에 담는데 그 덕에 감옥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는 공화정을 추구했는데, 왕정복고와 뒤이은 사회적 혼란을 우의적인 형상을 통해 표현했다."(105쪽)
"미술은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 요구하는 모든 요소를 담아 그것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와 작동 방식, 모순을 반영하며 투쟁의 장으로 기능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따라서 미술을 감상할 때 필요한 자세는 "그것을 애완견처럼 예뻐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가가 털어놓는 사심 없는 역사적 진실을 경청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미술은 "끝없이 권력에 복종하고, 동시에 끝없이 불복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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