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닦으셨어요?" 맨손으로 돼지고기에 양념을 버무리는 원순씨(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가 가장 반기는 호칭이라고 한다.)에게 신영희 연구원이 한 마디 한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냉큼 '씻었다'고 대답하는 원순씨.
그러더니 '주방장'으로서의 권위를 의식한 듯 "이런 음식엔 땀도 좀 들어가야 한다"며 한 마디 얹고는 주변을 둘러보지만, 반응이 없자 머쓱했던지 또 한 마디. "냉장고에 있던 고기라 그런가? 손이 정말 시리네…."
24일 저녁,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희망제작소 3층 주방. 박 상임이사가 신규 후원회원 몇 명을 초대해 김치찌개를 대접하기로 한 날이다. 음식 준비는 공언한 것처럼 박 상임이사의 책임. 그게 미덥지 않았던지 신 연구원이 '보조'(?)로 가담한 터였다.
상에 찌개 하나만 덜렁 놓기 뭣하다며 추가한 메뉴가 제육볶음이었고, 야채며 밑반찬, 돼지고기 등 장을 봐온 것도 두 사람이었다. 찌개가 국이 됐네, 두부를 너무 잘게 썰었네…. 실세 보조의 끊임없는 지적에도 그럭저럭 찌개는 끓었고, 손님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식탁이 차려지는 동안 박 상임이사는 손님들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희망제작소 소개와 사업 성과 등을 설명하더니 서가에 빼곡히 꽂힌 파일들을 가리키며 각 내용들을 소개한다. 그 중 하나를 뽑아 든 게 '코인 스트리트'라는 파일이다.
"영국 런던 테임즈 강변의 한 마을 이름인데, 주민들이 주도해 일부 공간을 상업시설로 개발하고 그 수익으로 아름다운 동네를 만들었어요. 그들도 거대 개발회사에 맞서 10년간 싸워 이겼는데, 우리와 달리 창의적 대안이 있었던 거죠. 우린 아무도 안 살던 동네처럼 과거의 흔적들을 콘크리트로 뒤덮고는 주민들 내쫓고 엉뚱한 사람 돈 벌게 하는 식이잖아요. 용산 참사 같은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지역개발 모델입니다." 그의 열정적 설명은 "찌개 다 식겠다"는 연구원의 지청구를 듣고서야 멎었다.
출범한 지 3년. 시민운동 살림이 어디나 넉넉했던 적 없었고, 세상이 다 어려운데 '여기'만 풍요롭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희망제작소의 어려움이 예사롭지 않다는 말이 연초부터 떠돌던 터다.
주요 수익모델 가운데 하나가 창의적 아이디어를 정부나 기업 등에 판매하는 창의 마케팅인데, 알려진 것처럼 행정안전부와 맺은 지역홍보센터 건립 사업이나 하나은행과 합의한 소기업 후원사업 등이 줄줄이 무산된 것. 사무실을 옮긴 것도, 이 날의 김치찌개 행사도 그런 저간의 사정과 무관치 않다.
초대 손님은 헤어샵 원장과 식구들, 주부, 출판사 직원, 대학원 준비생, 교사, 사업가, 난민구호활동에 관심이 많다는 고3 여학생 등 다양했다. 식후 티타임에는 삶과 사회적 가치를 결합할 수 있는 다양한 구상과 아이디어들을 주고받았고, 박 상임이사와의 간단한 문답시간도 가졌다.
-노후 걱정은 없으신지.
"솔직히 가끔 걱정되긴 해요. 우리나라는 나이 많은 사람이 주로 밥값을 내잖아요. 지금은 강연료를 버니까 낼 수 있는데, 그런 일 다 끊어지면 어쩌나 하는 거죠. 그래도 제 직업엔 은퇴라는 게 없어요. 먼저 검찰총장 된 사람과 후보로 거론된 이들이 대부분 제 동창 또래예요. 그 사람들은 언제 떨려날지 가슴 졸이지만 전 그만두려면 사임투쟁을 해야 해요. 참여연대 그만 둘 때도 그랬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제 사표 수리를 안 해줘요. 행복한 일이죠."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공적 삶과 사적 삶의 균형은?
"완전히 파괴됐죠. 인간이 모든 일에 완벽해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잖아요. 초기에 식구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놓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요. 그래도 아직 이혼 안 당했고, 전 퇴직금도 없으니 황혼이혼 걱정도 안 해요."
가계 살림에는 얼마나 보태냐는 질문에는 "아내도 일을 하니까 대충 먹고는 사는데, 자세히 알면 서로 괴로우니까 잘은 모른다"고, "그래도 왠만한 직장 간부만큼은 버니까 얼마씩은 보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수입 중 상당액도 직원이나 연구원들을 위한 기금으로 들어간다.
집도 기부하고 세를 살지만, 지금 집이 전세 2~3억 원은 되니 별 걱정 없다고 말하는 그다. 행사는 시종 유쾌한 웃음 속에 예정 시각보다 1시간 가량 길어져 밤 9시 30분께 마무리됐다.
인터뷰는 원순씨의 방에서 이어졌다.
-후원회원 모집 성과는.
"기존 회원은 700명 정도였는데, 올 들어 적극적으로 나서 3,000명을 넘겼고 10만원 이상 후원자도 200명 가량 돼요. 박정희 때 감옥 갔던 게 제게 보약이 됐듯, 최근 직간접적인 압력이 희망제작소 체질을 보다 건강하게 해주는 계기가 됐어요."
-희망제작소의 일보다 박 상임이사 보고 오신 분들도 있는 것 같더라.
"우리 사업이라는 게 대중적으로 금세 어필하기는 어렵죠. 가난한 사람을 직접 돕는 것도 아니고 참여연대처럼 센세이셔널한 활동을 하지도 아니잖아요. 이제 3년 됐는데, 참여연대도 3년 될 때까진 사람들이 잘 몰랐어요. '경실련 비슷한 거야'라고 소개했을 정도니까요. 언뜻 보면 잘 몰라도 자세히 보면 우리 일에 다들 감동하세요."
-국정원의 시민진영 개입 발언 이후 달라진 점은.
"특별한 건 없어요. 우리 일이 정부와 부딪칠 게 전혀 없는데, 이상한 사람들이죠. 비영리기구(NPO)라면 무조건 정부 괴롭히거나 기업에 시비 거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미국을 보세요. NPO 활동이 전체 GDP의 7%를 차지해요. 공익 자원봉사자가 전 성인인구의 절반인데, 그걸 풀타임 노동자 기준으로 보면 매일 800만 명의 근로효과가 있대요. 우리가 하는 퇴직 시니어 사업인 행복설계 아카데미만 해도 일자리 창출 사업이거든요. 정부가 돈 들여서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대신하고 있어요."
-최근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만나셨다던데.
"만나자고 해서 정부를 잔뜩 비판해줬어요. 전 이 대통령을, 그 분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몇 백 명 안에 드는 분으로 여겨왔어요. 서울시장 시절 인연도 있고요. 이 정부의 성공을 바랍니다. 국민에게도 좋은 일이고 그래야 야당도 더 열심히 할 거 아닙니까. 2시간 가량 얘기를 했고 메모는 꼼꼼히 하던데 아직 피드백은 없어요.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아요.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바꾸기에는 이미 구축해놓은 이념적 대결구도가 너무 단단하고 적과 동지를 엉뚱하게 갈라놓은 것 같아요."
그는 '인터미디어리(Intermediary)' 곧 중간적 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려면 희망제작소 같은 시민조직과 지역단체 등의 중개가 필수적이죠. 정부와 그런 조직들의 가버넌스, 협력관계가 다 무너졌어요. 우익조직요? 정치적 구호만 떠드는 뉴라이트 진영의 몇 개 단체 외에 정말 필요한 풀뿌리 조직이 있습니까?"
그는 최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SIX(Social Innovation eXchange) 여름학교' 참관기 등 국내외의 선진 흐름의 현장들을 누비며 보고 듣고 느낀 바와 다양한 창의 혁신의 컨텐츠들을 모아둔 자신의 블로그(원순닷컴)를 언급하며 "대통령부터 먼저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했다. 자본주의라도 나라마다 사회마다 색깔이 다 다른데, 우리만 극단적 잣대로 사람과 세상을 재단하려 든다는 것이다.
"저만 해도 상당히 보수적인 면이 있을 겁니다. 50대 중반이고, 경상도 남자거든요. 그럼 전 보숩니까? 이념이란 생물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는데 우리는 포획할 수 없는 도구로 그걸 붙들려고 헛발질하고 있어요. 40년대도 아니고…. 제겐 미래지향적이냐 과거지향적이냐, 실천적이냐 이념적이냐 등이 훨씬 의미 있는 잣대예요."
박 상임이사는 새 자리를 잡을 때 이미 어떻게 하면 떠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함께 일하는 이들의 팀워크, 둘째는 사업의 패턴, 세 번째는 지속가능성, 특히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따져봐요. 좋은 활동가들이 창의와 열정으로 뭉쳐 의미 있는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기반이 닦였다고 생각되면 전 떠납니다. 관계를 단절할 땐 거의 폭력적으로 끊어요. 의존하게 되면 서로 불행해지거든요."
그렇게 그는 참여연대를 떠났고,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를 떠났다. 참여연대는 국내 대표 시민운동 단체로 굳건하고, 아름다운 재단의 지난 해 모금액 만도 150억 원이 넘는다. 아름다운 가게는 최근 100호 점포를 넘어섰고, 대안가게인 아름다운 커피의 매출도 내년 100억 원을 기대하고 있다.
물수제비뜨듯 그가 일으킨 희망의 파문들은 이미 세상의 아름다운 물결로 번지고 있고, 희망제작소의 주요 사업들 -사회창안센터 활동, 해피 시니어 사업, 희망아카데미 등- 도 나은 내일을 향한 새 물길을 열고 있다.
마지막 질문. 그는 인간의 모든 긍정적인 단어들을 포갰을 때 만들어질 교집합의 이름을 '관계(Withness, Togetherness)'라고 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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