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할인점이 납품업체에 판촉사원을 파견하도록 한 것은 우월한 지위를 남용한 행위이므로 파견에 따르는 인건비를 할인점 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형 할인점이 협력사원을 파견받는 식으로 납품업체에 판촉 비용을 떠넘겨온 관행을 민사상 불법으로 규정해 책임을 물은 첫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황태포를 대형 할인점 한국까르푸(현 이랜드리테일)에 납품했던 유통업자 A씨가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1997년부터 까르푸 측의 요구에 따라 까르푸의 영업점들에 협력사원을 파견했고 이들의 인건비를 부담했다. 협력사원의 채용과정은 까르푸 측이 주도했으며, 영업점들은 협력사원들에게 황태포 판매 업무 외에 생선코너 판촉 업무도 맡겼다.
A씨는 계약이 해지되자 까르푸를 상대로 "인건비와 리베이트 비용, 행사 비용 등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냈으나 1심은 청구를 기각했다. 2심은 "A씨가 파견한 협력사원 중 황태포 판매 업무 외의 일을 맡은 사원에 대한 임금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라면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하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불공정 거래 행위가 없었다면 A씨가 지출하지 않았을 비용, 즉 협력사원을 파견함으로써 지출한 인건비 등 비용의 합계액이 손해배상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조치를 내리거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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