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詩로 여는 아침] f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詩로 여는 아침] f

입력
2009.07.27 01:48
0 0

그가 프랑크푸르트에 갔다

프랑크푸르트는 f가 두 개나 들어가서

발음할 때마다 불편하다

두 개의 f를 발음하다가

다섯 시 오십오 분을 놓칠 수도 있다

루프트한자를 타고 갔을까

하나의 f를 매달고 한 번의 화장실

두 번의 식사 세 번의 기지개를 켜고

신문을 꼼꼼히 읽고

창밖의 구름으로 아무것도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적금을 적립식 펀드로 바꾸라고

은행 직원이 전화를 했다

펀드의 f는 불안하다

네시 반까지 은행 시간도 불편하다

보도블록같은 f

아파트 난간에 서서

날아가는 빨래를 본다

f같이 서서 죽은 새들을 향해

손을 뻗어본다

새 같지만 f같은 마음에 도달한다

● 에프는 우리말에는 없는 음이다. 우리의 입술과 혀는 에프라는 음에 단련되어 있지 않아서 에프, 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얼마간 긴장을 한다. 오랫동안 독일어를 쓰고 있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 에프가 들어가는 단어 앞에서는 언제나 긴장을 한다.

아랫입술을 윗니에다 숨기고 윗입술에다가 바람을 약간 넣어 그 음을 발음할 때 나는 이곳에서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삶 전체가 팽팽히 이 음 앞에서 긴장하고 있는 이 느낌은 불편하다가 불안으로 바뀐다.

'f같이 서서 죽은 새를 향해' 손을 뻗을 때 '새 같지만 f같은 마음에' 도달한다고 시인은 쓴다. 이 마음은 불안하다, 그래서 새같으나 f같은 마음인 것이다.

에프를 편안하게 발음할 수 있을 때 나는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 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직 멀고도 먼 생각일 뿐이다. 날 불안하게 하는 에프가 입술과 혀 안으로 유순하게 들어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수경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