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프랑크푸르트에 갔다
프랑크푸르트는 f가 두 개나 들어가서
발음할 때마다 불편하다
두 개의 f를 발음하다가
다섯 시 오십오 분을 놓칠 수도 있다
루프트한자를 타고 갔을까
하나의 f를 매달고 한 번의 화장실
두 번의 식사 세 번의 기지개를 켜고
신문을 꼼꼼히 읽고
창밖의 구름으로 아무것도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적금을 적립식 펀드로 바꾸라고
은행 직원이 전화를 했다
펀드의 f는 불안하다
네시 반까지 은행 시간도 불편하다
보도블록같은 f
아파트 난간에 서서
날아가는 빨래를 본다
f같이 서서 죽은 새들을 향해
손을 뻗어본다
새 같지만 f같은 마음에 도달한다
● 에프는 우리말에는 없는 음이다. 우리의 입술과 혀는 에프라는 음에 단련되어 있지 않아서 에프, 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얼마간 긴장을 한다. 오랫동안 독일어를 쓰고 있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 에프가 들어가는 단어 앞에서는 언제나 긴장을 한다.
아랫입술을 윗니에다 숨기고 윗입술에다가 바람을 약간 넣어 그 음을 발음할 때 나는 이곳에서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삶 전체가 팽팽히 이 음 앞에서 긴장하고 있는 이 느낌은 불편하다가 불안으로 바뀐다.
'f같이 서서 죽은 새를 향해' 손을 뻗을 때 '새 같지만 f같은 마음에' 도달한다고 시인은 쓴다. 이 마음은 불안하다, 그래서 새같으나 f같은 마음인 것이다.
에프를 편안하게 발음할 수 있을 때 나는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 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직 멀고도 먼 생각일 뿐이다. 날 불안하게 하는 에프가 입술과 혀 안으로 유순하게 들어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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