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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퀄컴

입력
2009.07.2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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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휴대폰 뒷면에는 작은 스티커가 하나가 붙어 있다. 자세히 보면 깨알 같은 영문 글씨가 씌여 있다. 'digital by Qualcomm.'미국 퀄컴사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반도체칩 기술을 이용해 휴대폰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사실 퀄컴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사상 최대 과징금(2,600억원)을 부과하기 전만 해도 일반에는 다소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퀄컴은 10년 넘게 국내 시장의 99%를 점하며 연간 1조원 이상의 로열티를 챙겨간 초대형 기업이다. 우리가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그들의 지갑은 더 두둑해지는 구조였다.

▦퀄컴의 어윈 제이컵스 회장은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을 거쳐 교수 생활을 했다. 68년 자신이 설립한 통신기술 컨설팅 회사 링카비트가 다른 기업에 합병된 뒤 신제품 개발을 등한시 하자 동료 6명과 함께 회사를 나와 85년 퀄컴을 세웠다. 이후 그는 CDMA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원래 CDMA는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퀄컴이 '발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이컵스 회장은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CDMA 기술을 '개척'함으로써 퀄컴을 수천 건의 CDMA 특허를 보유한 원천기술 기업으로 키웠다.

▦퀄컴은 설립 이후 92년까지 적자를 냈지만 한번도 연평균 매출 대비 20%에 달하는 연구개발 비용을 줄이지 않았다. 99년에는 매출 비중이 높아지던 통신장비ㆍ단말기 사업 부문을 과감히 정리했다. 휴대폰용 반도체칩 개발ㆍ연구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마침 CDMA를 이동통신 표준기술로 채택한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CDMA 기술 확산의 중심이 되면서 퀄컴은 날개를 달게 됐다. 퀄컴은 한국이 없었다면 연매출 114억 달러의 초대형 기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역시 퀄컴 덕분에 이동통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퀄컴의 성공 사례는 원천기술 개발과 지적재산권 비즈니스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올초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기준 한국의 기술무역수지 배율은 0.43배로, 기술 수출액이 수입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는 21개 OECD 회원국 중 19위, 세계 1위 일본(3.49배)의 12%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의 특허권 등 기술 사용료 수지는 33억 9,800만 달러 적자였다. 퀄컴에 대한 공정위 제재에 만족하기 보다는 어떻게 그들이 이동통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기술 권력이 됐는지 살펴볼 때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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