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에 대한 단서를 포착한 것은 2006년 2월. 첨단 산업 분야여서 사건 내용이 복잡하고 방대해 사실 조사 작업에만 3년 가량의 시간이 필요했다. 공정위가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하면서 본격적인 제재 수순에 돌입한 것은 올 2월 중순. 이후 6차례의 전원회의와 퀄컴은 물론 신고인에 대한 진술 기회 부여 등 다난한 과정을 거쳐 세계 각국 경쟁당국 중 처음으로 제재를 내리게 됐다.
이번 제재가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과징금 규모가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최고 과징금이 1,000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고, 그것도 여러 회사에 함께 부과된 금액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비록 잠정적이긴 하지만 이번에 퀄컴에 부과된 2,600억원은 가히 기록적이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 등 거대 다국적 기업에 대해 과징금이 부과된 적이 있지만, 그 액수는 각각 324억원, 260억원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매출액의 2%를 기본 과징금으로 3% 이내에서 부과하도록 돼 있다"며 "이런 규정에 따라 퀄컴에 대해서는 일부 가중치를 적용해 관련 매출액의 2.2%를 과징금으로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정위의 퀄컴 제재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경쟁당국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 역시 우리 공정위의 조사 과정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럽연합(EU) 역시 현재 비슷한 사안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작년에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텔에 대해 제재를 한 이후 EU가 인텔에 대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며 "이번에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퀄컴에 대해 추가적인 제재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지난 10년 가까이 국내 시장의 98% 이상을 점유해 온 퀄컴의 독점이 무너질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와 로열티 차별 등으로 퀄컴의 독점이 강화된 측면이 있다"며 "급속하지는 않겠지만 점진적으로 퀄컴의 독점적 지위에 균열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퀄컴 측은 "이번 공정위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결정이 글로벌 제재의 시작일 가능성이 높은 마당에 퀄컴 측이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차영구 퀄컴코리아 사장은 "로열티 할인과 인센티브 등에 대해 퀄컴을 제소한 기업들은 한국 휴대폰 업체들의 경쟁사인 노키아에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이라며 "이번 공정위 결정은 퀄컴과 한국기업과의 동맹 관계를 깨뜨림으로써 한국 휴대폰 제조사들의 글로벌 경쟁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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