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뜨거운 음식을 좋아해서 가슴이 뜨거운 것 같지 않아?”라는 말은 남편이 했다. 장마와 폭염을 오가는 날씨에도 단골 고추장찌개 집을 지나칠 수 없었던 우리를 보며 하는 말이었다. “응, 이렇게 더운 날에도 푹푹 끓인 찌개에 목구멍을 태우는 소주가 좋으니, 우린 참 정열적이야.” 나의 답이었다.
본격적인 바캉스철이 시작되었다.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 바다에 발 담그고 싶다. 비양도가 저 너머 보이는 제주도 밥집에서 갈치조림 먹고 싶다. 산에 오르고 싶다. 산바람 솔솔 부는 바위에 앉아 도시락 까먹고 싶다. 이런 마음이 가득해도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남편에 나는 원고 마감이 코 앞이니, 그저 밤 깊은 동네를 슬슬 걷다가 선술집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솜씨 좋은 ‘이모님’의 고추장찌개는 별미다. 양파랑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인 달큰한 베이스 국물에 고운 고춧가루와 찰고추장으로 맛을 낸다. 듬성듬성 썰어 넣은 돼지 목살이 숟가락을 휘저을 때마다 걸려 나오면, 겉절이 무채를 얹어 먹는다. 날이 이렇게 더운데, 밤이 깊어도 공기가 서늘해지지 않는데 20평 남짓한 찌개집 안을 가득 채운 넥타이 부대, 아가씨 회사원들, 동네 주민들은 저마다의 찌개를 끓이며 맥주며 소주로 주량껏 조용히 목을 축인다.
토요일까지 업무로 가득했다가 일요일이 오면, 막상 무얼 해야 할지 갈피를 잃는다. 어릴 적, “아빠는 왜 일요일에 잠만 자?”라고 했던 생각이 난다. 나는 이제 일요일마다 ‘아빠’처럼 늦잠을 잔다. 그렇게 보내는 일요일 오후에 어울리는 곳은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다. 가족끼리 외식을 나온 이들로 골목이 자가용으로 붐빈다. 콩나물을 넣어 끓이는 즉석 떡볶이에 요즘은 떡볶이 집마다 ‘닭발’이 유행이다. 눈물 나게 매운 닭발에 맥주잔을 기울이는 아빠와 작은 아버지, 콩나물을 건져 먹는 꼬맹이, 떡볶이 떡이랑 쫄면을 건져 먹는 꼬맹이의 남동생이 “엄마도 드세요”라며 효자 티를 낸다.
보글보글 끓여가며 먹는 뜨끈한 음식을 가운데 두고 여름 공기에 지친 도시인은 잠깐 딴 생각을 한다. 입에서부터 뱃속까지 뚝 떨지는 후끈한 맛이 기온은 높지만 차가운 관계들의 연속인 도시 생활의 연료가 되어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