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행된 경찰의 야당 인사와 언론인 테러에 미국이 침묵으로 일관해 버락 오바마 정부 외교정책의 양면성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최근 온두라스 쿠데타로 축출된 반미 성향의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을 지지, 미국의 민주주의 중시 외교를 과시한 오바마 정부가 키르기스스탄의 독재 정치를 묵인하는 이유는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미국 공군기지 때문이다. 수도 비슈케크 인근에 있는 마나스 기지는 아프가니스탄 미군에게 군수품을 수송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시설. 하지만 2월 쿠르만벡 바키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을 긴장시켰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바키예프 대통령이 테러 근절을 위해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친서를 전달하고 기지 사용료를 인상한 후에야 기지 폐쇄를 막을 수 있었다.
NYT는 "바키예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모습에서, 권위주의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권 유린에 눈감는 오바마 정부의 '실용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2005년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반체제인사 수백명 살해를 공개 비난했다가 우즈벡의 미군기지를 잃은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최근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한 윌리엄 번스 미 국무부 정무차관 역시 대선과 관련해 "공정하고 신뢰성 있는 선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만 했을 뿐 야당과 언론인 탄압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야당 후보였던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전 총리 진영에서는 "바키예프 대통령의 힘은 미국의 묵인으로부터 나온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아탐바예프 후보의 선거 책임자는 "바키예프 정권은 미국이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 같은 원칙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며 "미국은 이 나라에서 아프간 전쟁을 치르기 위한 체제안정과 군기지 만을 원하고 있다"고 NYT에 주장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대통령 관련 탐사보도로 저명한 언론인 시가크 아브딜다예프는 3월 공개된 장소에서 스물아홉 번이나 칼에 찔리는 테러를 당한 후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아브딜다예프는 NYT에 "그들은 만인이 보는 앞에서 나를 잔인하게 살해해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며 "현재 이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자신의 생각을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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