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을 통한 수업방식을 채택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지식의 일방적 전달보다는 피교육자 스스로 참여하여 깨닫는 능동적 교육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연구결과가 현장에 적용된 것이다. 연명치료중단(존엄사)과 같은 생명윤리 문제에서도 입장이 다른 상대방의 비판을 수용하거나 반박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저절로 합의에 도달하기도 한다.
입장 바꿔놓고 생각을
의미 없는 삶의 연장에 반대하는 의사들과 그들을 처벌할 권한을 가진 검찰이 협의를 통해 기준을 만들고 철저한 감시 속에 시행해 본 결과 별 문제가 없자 법률로 안락사를 허용한 네덜란드의 사례는 토론을 법보다 앞세우는 유럽인의 합리성을 잘 보여준다. 생명윤리 교육도 철저히 토론식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쟁점 사안에 대해 자신과 입장이 전혀 다른 상대편을 옹호하고 자신의 입장을 오히려 비판하는 토론을 하기도 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상대방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진짜 토론에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도 쉬워진다. 토론이 끝나면 입장을 바꾸게 된 사람에게서 그 이유를 듣는 과정도 빼놓지 않는다. 텔레비전 토론이 끝나면 토론 결과 달라진 민심이 곧바로 화면에 비친다. 그렇게 토론의 승패가 갈리고 토론자들은 대체로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토론의 핵심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다. 잘 듣고 상대방을 정확히 이해한 토론자가 이긴다.
저명인사를 등장시켜 답하기 어렵거나 때로는 민망한 질문을 퍼붓는 하드토크(HARDtalk)라는 프로그램은 영국 BBC의 자랑거리중 하나다. 진행자는 출연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출연자는 능숙하게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는데, 바로 이런 치열함이 인기의 비결인 듯하다. 1주일에 네 번씩 10년 이상 방송을 계속해 왔다니 망신할 것이 두려워 출연을 거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대중이 자신의 입장에 공감하기를 원한다면 강력한 반론에 빈틈없이 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 때문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의 BBK 벤처사기 관련여부를 추궁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대신 "식사했어요?"라고 동문서답하던 클린정치위원장이 여전히 각종 토론 프로그램에 단골 출연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토론식 수업을 해 봐도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거나 담당교수의 입장에 거스르지 않으려는 정서가 너무 커 제대로 된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은 거대한 의사소통의 장이지만 대개는 논지와 관계없이 상대방에 상처를 주거나 입장이 같은 사람끼리 자기만족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게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된 미디어 관련법도 제대로 된 토론을 거친 것이 아니다. 찬성표를 던진 여당 의원들조차 표결 하루 전까지 법안의 정확한 내용을 몰랐다니 할 말이 없다. 그 동안 공청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반대자의 참여가 극도로 제한된 상태였고, 그런데도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찬성보다 두 배나 많은 과반수였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의견 합치점 찾는 노력
미디어 관련법은 입법과정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탈법적이었을 뿐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가까운 보수신문의 방송진출이 핵심인 만큼 다양한 여론의 표출을 억제할 소지가 크다. 그 과정은 토론의 문법에 맞지 않았고 그 결과는 비판의 문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비판은 토론을 위한 것이고 토론의 목적은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확인하고 다른 가운데 함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진정한 비판과 토론은 나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내 속에 조금 담아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여야가 서로 입장을 바꿔 상대방 입장에서 토론해본 다음에야 표결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법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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