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의 육탄 대치 끝에 미디어법을 통과시켰지만 사상초유의 재투표가 이뤄진 데다 대리투표 의혹까지 제기돼 향후 치열한 법리 논쟁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 법적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재투표는 미디어법 가운데 신문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오후 4시께 진행한 방송법 개정안 표결에서 벌어졌다. 짧은 투표를 마치고 오후 4시2분께 투표 결과가 나왔으나 재석 145표 중 찬성 142표, 기권 3표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부결"이라며 환호성을 올렸지만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곧바로 "다시 투표해 달라"고 지시했다. 곁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투표 종결하면 안돼"라고 다급히 외친 직후였다.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 실시된 재투표에서 방송법은 재석 153표 중 150표 찬성, 기권 3표로 통과됐다.
문제는 이 부의장이 투표종료를 밝힌 시점에 이미 전광판에 표결 내용이 떴다는 점이다. 부결된 상황이 공개된 뒤 재투표에 들어간 셈이다. 민주당 측은 "이미 실시된 투표는 그 자체로 유효하며 재석 과반이 넘지 않은 것은 투표무효가 아니라 부결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부결된 안건을 같은 회기 중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한다'는 국회법 92조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국회 의사국장의 판단에 의해 회의를 진행했다"며 "의결정족수가 성립되지 않았을 때는 그 안건이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다시 표결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의사일정 미료(未了) 안건에 대해서는 의장이 다시 그 일정을 정한다'는 국회법 78조를 근거로 댔다. 허용범 국회 대변인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재석의원이 의결정족수에 미달하는 수에서 투표종료 버튼이 눌러져 표결이 성립하지 못했다"며 "이에 다시 표결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게 국회사무처의 설명"이라고 밝혔다.
신문법 표결 때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의석을 돌며 '찬성'버튼을 눌렀다는 대리투표 논란도 심각하다. 본회의장의 표결은 각 의원의 자리에 설치된 전자투표기를 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이날 의장석 주변을 사수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미처 자신의 자리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신문법 투표 당시 전광판에 빨간 불(반대)이 들어왔던 김재경 나경원 유승민 허원제 이한구 의원 등이 어느새 파란불(찬성)로 돌변하는가 하면 방송법 1차 투표 때 정병국 의원이 주변 자리인 옆 자리인 한선교 주호영 의원의 컴퓨터에 터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현장에서 봤겠지만 강봉균 민주당 의원에도 불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 측은 몸싸움 와중에 오히려 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 의석을 돌며 교란행위를 한 것이란 주장이다. 국회사무처는 본회의장 대리투표 선례가 없어 이를 입증한 증거자료가 제시된 후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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