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는 철저히 양분된다. 멜로드라마냐, 아니면 코믹드라마냐가 아니다. '착한'드라마냐, '나쁜' 드라마냐로 나뉘어 불린다. 자극적인 이야기 전개와 비인간적인 캐릭터들을 미끼로 시청자를 억지로 TV 앞으로 끌어당기려는 소위 '막장 드라마'가 방송가의 흥행 코드가 되면서 이같은 새로운 이분법이 얘기되고 있다.
차마 공중파에서 방송되는 장면이라 믿겨지지 않는 화면들이 매일 안방으로 전해지고 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감금하고 폭력을 가하거나(KBS '장화홍련'), 바람을 피웠다고 항의하는 아내를 가두고 성폭행하며(MBC '밥줘'), 미성년자 이복동생과 유부남 이복오빠가 키스를 하고(MBC '트리플'), 내연녀와 결혼하려는 남편에 맞서 아내는 연하남과 정을 통한다(SBS '두아내').
TV 드라마에 이같은 비상식적인 스토리가 난무한다. 아무리 재미를 주는 대중문화 상품의 하나이지만, 드라마의 막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막장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로 '매출액 감소와 경쟁력 약화로 기울어진 지상파 방송사의 위상'을 꼽는다. 방송사의 수익 감소는 제작비를 줄이면서 단기간에 드라마를 완성해야 하는 풍토를 만들고, 결국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된, 원초적이면서 막무가내식의 스토리를 대입해 단시간에 찍어내는 공정이 안착했다는 것이다.
방송개혁시민연대가 20일 주최한 'TV드라마의 위기와 발전방향' 토론회에서 오명환 용인송담대 교수는 "집단출연, 거대한 오픈세트, 장거리 출장 등이 필요없는 스튜디오 내 촬영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막장 드라마는 매우 경제적이다"라며 "배우들의 출연료가 전체 제작비의 60%를 점하는 뒤틀린 구조가 소재의 연성화와 아류화를 재촉해 결과적으로 막장 드라마 신드롬을 부추긴다"고 진단했다.
오 교수는 "막장 드라마는 기획력 부족과 창의력 빈약에서 비롯한 일종의 매너리즘이며 인생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결핍된 결과"라고 덧붙였다.
막장 드라마는 지나친 시청률 경쟁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률 조사 과정의 오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궁영 동아방송대 교수는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중년 주부들, 자사 제품의 타깃 소비층의 정체와 시청 행태를 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로 구성해 광고주에게 제공한다면 지금처럼 막연히 시청률을 위해 경쟁을 벌이는 관행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수준이 낮은 드라마는 공중파보다는 특화된 전문채널을 통해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막장 드라마가 잘못된 편견을 시청자에게 심어주고 반인륜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공공성을 중시해야 하는 지상파 방송은 드라마 제작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최상식 중앙대 교수는 "민영방송도 자체 심의기준에 맞게 드라마를 제작해야 하지만 공영방송은 특히 공익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드라마가 방송되지 못하도록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단법인 밝은청소년지원센터는 5월18일부터 6월14일까지 4주 동안 지상파 방송을 모니터링한 결과와 서울 거주 중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시청행태 조사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TV를 시청하는 시간대는 드라마가 집중 편성되는 오후 10~11시(40.66%)로 나타났다.
밝은청소년지원센터는 "물리적 폭력과 언어 폭력이 남발되는 드라마들에 청소년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며 "대표적 불륜드라마인 '두아내', '밥줘' 등이 가족시청 시간대에 편성돼 있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센터측은 "폭력성과 선정성이 짙은 드라마들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방송프로그램 등급분류 기준의 강화,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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