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국내 TV를 통해 방영된 '러브보트'라는 외국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말쑥하게 차려입은 선장과 선원. 특급 호텔만큼 화려한 배에서 매일 밤 파티를 즐기며 휴양지를 오가고, 거기서 싹트는 달콤한 로맨스를 다룬 미국 드라마로 기억된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사랑 이야기만큼이나 달콤한 크루즈 여행을 마음속에 품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해외여행에 대한 규제도 많았을 때 여서 감히 크루즈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꿈같은 일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러브보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을 무렵 직접 크루즈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2005년 서울 컬렉션을 마치고 SFAA(서울 패션 아티스트 협회)의 선배 디자이너들과 수중 도시 베니스를 시작으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오스만 투르크의 수도로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를 꽃피웠던 터키의 이스탄불, 그리고 천국과도 같은 산토리니섬, 올림픽의 발상지였던 그리스 아테네까지 9박 10일간의 일정으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출발지였던 베니스는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거대한 7층 건물 높이의 크루즈 선에 올라 내려다 본 베니스의 경관은 황홀 그 자체였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호텔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크루즈 선은 낮에는 유적지에 정박을 하고, 밤이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서 여행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여행이었다.
크루즈 여행 중 가장 잊지 못할, 오랫동안 가슴 뭉클하게 했던 곳은 기원전 6세기경 에페소스의 고대 콜로세움 유적지였다. 석양이 질 무렵 도착한 그곳에서 고대 그리스 복장을 한 남녀들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손님들에게 시중을 들었고 사자와 노예들이 대결을 펼쳤던 마당에서는 현악 5중주의 공연이 열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바라본 산토리니 섬의 풍광도 잊을 수가 없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아래 파란 하늘과 바다가 서로 맞닿아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모를 만큼 신화와 전설로 가득한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콥카프 궁전, 비잔틴과 이슬람의 흔적이 공존하는 성 소피아성당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보석들로 가득 찬 돌마마흐체 궁전 등 동서양 문명의 치열했던 흔적이 모두 남아있는 세계유산의 보고인 이스탄불에서는 시간마저 붙잡고 싶을 만큼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신들의 나라' 아테네 유적지를 품고 있는 그리스에서 9박 10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근 국내에서 크루즈 여행이 급부상하면서 거기에 맞는 패션 스타일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크루즈 패션은 단지 여가를 즐기기 위한 옷이 아닌 여름을 대변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트렌드로 인식돼 여행지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일명 '크루즈 룩'이 탄생되었다.
그런데 크루즈 룩을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즐겨 입는 간편한 캐주얼 복장쯤으로만 여겼다면 큰 실수다. 이미 크루즈라는 말에 어느 정도 의상에 대한 공식이 들어있다. 바로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편안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그럼 먼저 크루즈 룩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마린(marin)룩'에 대해 알아보자. 마린룩은 단어 그대로 선장과 선원의 복장에서 유래한다. 마린 룩을 머리속에 가장 쉽게 떠올리고 싶다면 영화 '사관과 신사'의 주인공 리처드 기어가 입은 제복을 떠올리면 된다. 금장단추와 금줄로 장식된 하얀 제복. 여기에 남 프랑스를 연상시키는 파란 가로줄 무늬의 티셔츠가 마린 룩의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이다.
파란 가로 줄무늬 티셔츠는 니스와 모나코,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남프랑스에서 뱃사람들이 즐겨 입었던 것으로 피카소도 이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마린룩의 기본은 흰색과 파란색이다. 마린 룩을 쉽게 연출하고 하고 싶다면 먼저 흰색 팬츠 하나를 선택하라. 여기에 재킷이 필요한 경우 코발트 블루나 같은 화이트의 짧은 재킷을 고르면 된다.
하지만 좀 더 캐주얼 한 차림을 원한다면 재킷 대신 앞서 설명한 파란색 가로 줄무늬 티셔츠를 추천한다. 캐주얼 한 차림에는 힐 대신 편안한 로퍼(굽이 없는 가죽구두)가 더 잘 어울린다.
선상의 파티처럼 우아한 자리엔 로맨틱한 의상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먼저 본인에게 어떤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지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화려한 칼라가 잘 어울린다면 오렌지, 옐로, 에메랄드, 그린, 레드 등 열대 과일처럼 싱그러운 색상들을 선택하라. 색감에 자신 있는 당신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만하고 용기를 내 과감하게 색상을 대비하면 더 효과적이다.
화려한 프린트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여름철이면 늘 등장하는 페이즐리(아메바 문양)보다는 이번에는 기하학적인 프린트를 추천한다. 작고 복잡한 문양의 기하학적인 프린트는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세련된 감각을 동시에 줄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스타일이 컬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흰색이나 베이지 또는 밝은 회색 등 베이직한 컬러를 선택해 코디하면 고급스럽고 멋지게 꾸밀 수 있다.
마지막으로 크루즈 여행에서는 격식 있는 드레스코드에 맞을 만한(남자라면 정장과 보우타이를 여자라면 드레스 와 액세서리) 옷들을 꼭 챙겨야 당황스럽지 않다.
우리는 아직까지 드레스 코드에 익숙하지 않지만 크루즈 여행에서는 정장과 구두를 갖추지 못하면 입장하지 못하는 만찬도 준비되어 있다. 이때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에게 제복을 갖춰 입은 승무원들이 에스코트하며 정중하게 자리를 안내해준다.
처음 크루즈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경유지 관광에 초점을 두지만 크루즈 여행은 경유지에 도착해도 내리기 싫을 만큼 배에서 즐기는 것이 백미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을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들을 꼼꼼히 챙겨 참여한다면 더욱 알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중년이라면 한 번쯤 사랑하는 부인과 단 둘이 떠나보길 추천한다. 멋진 낭만과 추억이 함께하는 크루즈 여행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만한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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