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5분, 길어야 7분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 안에 춤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누가 봐도 숨이 탁 멎을 듯 기가 막힌 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 일곱, 조갑녀 명인의 살풀이 춤 이야기다.
그가 나오면 판은 끝이다. 그 뒤로 누가 더 나와봤자 빛이 안 나니 놀음을 마쳐야 할 터, 그야말로 노름마치(고수 중의 고수를 일컫는 남사당패의 은어)다. 26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노름마치뎐 3 _ 춤! 조갑녀'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살풀이는 60년 넘게 자취를 감췄다가 2년 전에야 세상에 나온 귀한 춤이다. 열두 살 때부터 남원에서 '명무' 소리를 들었지만 열아홉에 전북에서 세 번째 가는 부자이던 한성물산 정종식 사장과 결혼한 뒤 집안에 꽁꽁 숨어버렸다.
여든 다섯이던 2007년 가을, 서울세계무용축제 중 '어머니의 춤'으로 비로소 무대에 섰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축제의 땅' 대표 진옥섭이 9년간 그의 집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애원한 끝에 성사됐다.
그 전에 춤을 내보이기는 딱 두 번, 1971년 남원 광한루의 완월정이 완공됐을 때와 1976년 춘향제 때의 축하공연이 전부다. 그의 춤을 못 잊는 사람들이 아무리 간청해도 나오지 않았다. 권번의 예기(藝妓) 출신인 게 알려져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봐 그랬다고 한다.
타고난 춤꾼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춤을 잊고 지낸다는 게 어디 쉬웠을까. 어머니의 춤을 이어받고 있는 딸 정명희(50)씨는 "춤 추고 싶어서 바람이 잔뜩 든 머릿속을 누르려고 뇌신(두통약)으로 살았다고 하셨다"고 전한다.
그는 수건 없이 맨손으로 추는 민살풀이춤의 명무다. 그게 살풀이춤의 원형이다. 춤꾼이 수건 덕을 보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춤은 무겁고 점잖다. 살풀이춤의 반주음악인 시나위 가락은 질고 끈끈하지만, 그 장단을 타고 노는 그의 춤은 말갛고 장하고 힘차다.
선 자리에서 많이 움직이지도 않지만, 보는 사람의 가슴에 큰 파도를 일으킨다. 배워서 되는 춤이 아니라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춤이다.
그의 말마따나 "몸에 가 백혀버린 춤"이고, 옛 사람들의 표현을 빌자면 '앵도(앵두ㆍ눈물)를 똑똑 따는' 춤이다. 춤 출 때 그는 뭘 했는지 모를 만큼 완전히 자신을 잊는다. 나중에 비디오를 보고서야 "어, 뒷짐을 졌네. 왜 왼팔부터 나갔지?" 할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같은 춤이라도 100번 추면 100번 다 다르다. 매순간 새로 돋아나는 춤이 그의 춤이다.
그는 말이 없다. 평소 하도 말이 없어 딸인 명희씨조차 고등학생 될 때까지 어머니 목소리를 몰랐다고 할 정도. 공연을 앞두고 서울 명희씨 집에 와 있는 그를 창덕궁 앞 한복집에서 만났을 때도 명희씨가 대변인 노릇을 했다. 그런 그가 춤에 대해 늘 하는 말이 있다.
"춤, 맹랑한 것이여. 생각할수록 맹랑해, 춤이. 내 멋이 없으면 못 해. 아무라도 못 추는 거이다. 멋도 있고 한도 있고 그래야 춤이지. 아무라도 활개 못 벌리는 거이여. 망 구십에 내가 뭣을 알것냐."
요즘 그는 집에 있을 때는 IPTV의 예술채널을 종일 틀어놓고 춤을 본다. 그는 "좋은 거 싫은 거도 없고, 그냥 무삼심심하게 보는 거지"라고 했다. 딸 명희씨는 "어머니는 마이클 잭슨, 이효리, 비, 서양춤, 아프리카춤 가릴 것 없이 춤이란 춤은 다 보신다"고 했다. "마이클 잭슨 춤에 대해서는 속멋이 들었다, 음악을 안다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조갑녀 명인에게 바치는 헌정공연이다. 강성민 박경랑 권명화 이현자 이정희 백경우 김운태 등 전통춤의 내로라하는 춤꾼들과, 김청만 박종선 원장현 김무길 한세현 등 최고의 잽이(악사)들이 모이는 것은 마지막 순서인 그의 살풀이를 빛내기 위함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명무가 모처럼 무대에 서는 것이니, 귀하디 귀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문의 (02)3216-1185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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