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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독일에서의 문화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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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독일에서의 문화충격

입력
2009.07.2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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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독일 사회를 처음 접했을 때의 문화 충격이 생생하다. 동양 젊은이의 눈에 비친 1985년의 독일사회는 온통 놀라운 일로 가득했다.

우선 수돗물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생수를 사먹고 음식점에서는 물을 돈 받고 파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교수가 담배를 피우며 강의를 하지 않나, 학생들은 한 술 더 떠 교수와 상관없이 강의시간에 버젓이 담배를 피워댔다. 강의실에서 태연히 뜨개질하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등록금이 없으니 누구든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정부에서는 장기 저리로 학자금을 대출해 주어 학생들은 독립적인 생활을 하였다. 대부분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는데 놀랍게도 4인 1실이 아니라 혼자서 방 하나씩을 사용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녁에 TV뉴스를 보면 동독에 상주하는 서독기자가 '여기는 동베를린입니다'라며 동독 소식을 생생히 전하는 장면이었다. 남북한의 극단적 대치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당시의 나로서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문과 수업에서는 최근에 나온 동독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석사나 박사 논문을 쓰는 학생도 상당수 있었다.

학교 앞 서점에서는 동독에서 출판된 대부분의 책을 살 수 있었다. 동독판 레닌 전집이나 맑스 엥겔스 전집도 자유롭게 주문할 수 있었으니 아주 헷갈리는 일이었다. '무찌르자 공산당',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등의 반공교육을 투철히 받고 자라며 북한 사람들을 무슨 도깨비처럼 여겼던 내게 서독 사회의 이런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2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독일과 비슷해졌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물을 사먹는 일이 이제 아주 당연하게 여겨진다. 대학에서도 여학생들이 복도나 로비, 캠퍼스에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강의실에서 뜨개질하는 학생은 보지 못했으나, 십자수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많다고 하니 그 점에서도 독일사회와 비슷해졌다.

그런 연유인지 요즘 독일에 가면 생활 환경이나 수준에서 그리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오히려 IT 관련 서비스에서는 독일사회가 답답하고, 백화점에 가도 별로 살 게 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많이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두 가지 부분에서는 아직 독일과 너무 다르다.

첫째로 우리는 아직 국민의 삶의 질을 정부가 보장해주는 복지국가에 이르지 못했다. 독일에는 하루 8시간 노동이 정착되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오후 4시면 어김없이 퇴근한다. 그래서 평일에도 저녁시간을 산책, 운동, 텃밭 가꾸기, 친교 등으로 여유롭게 보낸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국가가 제도와 정책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독일은 그 동안 통일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북한과 대치중이다. 아직까지 평양에 상주하는 특파원이 없고 책방에서 북한책을 주문할 수도 없으며, 북한 작가의 작품이 남한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지도 못한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물질중심적 가치관과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복지수준은 오히려 후퇴하고 남북관계도 악화하고 있다. 이제라도 무엇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인지, 북한과의 기본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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