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주의'. 대우전자(현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다른 이름이다. 1990년대 초ㆍ중반까지만 해도 '탱크주의'를 앞세워 거침없이 내달렸다. 대우전자의 무한 질주에는 마침표가 없어 보였다. 실제 이 회사 공장 앞에는 먼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언제나 장사진이었다. 대우전자는 현재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한 삼성전자, LG전자와 더불어 국내 가전업계를 주름잡던 대표 기업이었다.
하지만 IMF 사태로 모(母) 그룹이 공중 분해 되면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세 차례의 매각 실패와 절반 이상의 인원 감축 등 뼈를 깎는 고통 속에 10여 년의 밑바닥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가 백색가전 전문기업을 표방하며 '명가 재건'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우일렉의 주력 제품들을 생산하는 광주공장을 찾았다.
"컨트롤 판넬이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빨리 채워 주세요."
20일 오후 2시 광주 광산구 장덕동에 있는 대우일렉 공장 2층. 드럼세탁기 생산 현황을 면밀히 살펴보던 김용삼(45) 세탁기사업부 생산팀 파트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 나온다. 그 즉시 컨트롤 판넬이 조립 라인으로 운반됐고, 47명의 숙련된 인부들이 22초에 한대 꼴로 완제품을 토해냈다.
대우일렉의 심장부가 다시 뛰고 있다. 냉장고와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주력 제품 생산라인이 모여 있는 광주공장은 대우일렉의 성장을 주도하는 핵심 기지. 특히 주목 받는 곳이 세탁기사업부다. 평일 저녁 초과 근무는 물론이고 주말엔 특근까지 해야만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세탁기 생산라인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 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까지 몰렸던 대우일렉이 다시 활기를 되찾은 비결은 뭘까. "과거 누렸던 부와 명예를 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직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댄 결과, 위기의 탈출구는 역시 '히트 상품' 배출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과거 '공기 방울 세탁기'로 정상에 올랐을 때처럼 말이죠."
24년 동안 근무해온 강수향(51) 세탁기 공장장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끊임 없이 진행된 연구ㆍ개발(R&D) 투자와 노력을 기사회생의 주요인으로 꼽았다. 대우일렉이 1991년 내놓았던 공기 방울 세탁기는 출시 직후 3년간 연이어 국내시장 점유율 30%로 1위에 올랐다.
히트 상품에 목말랐던 대우일렉은 3년 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해 3월 신제품 '드럼업Ⅰ'을 선보였다. 조작 버튼을 정면에서 윗면으로 올려 편의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특히 드럼의 위치를 높여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꺼내기 위해 허리를 구부려야 했던 불편함을 해소, 주부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운동화 세탁 기능도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어 올해 4월 출시한 '드럼업Ⅱ'도 세제 자동투입 시스템과 여성 속옷 및 스타킹 코스 등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히트 상품 대열에 합류했다.
히트 상품이 잇따르면서 실적도 좋아졌다. 올해 상반기에 매출 1,300억원과 영업이익 50억원을 기록한 대우일렉은 가을 성수기 판매 증가에 힘입어 올 한해 매출 3,000억원에 영업이익 150억원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75억원을 기록한 영업이익 분야에서 100% 성장이 기대되는 셈이다.
미국시장에 대규모 물량 공급을 위해 진행 중인 현지 '빅 바이어'와의 계약도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제품 주문이 늘어남에 따라 현재 연간 89만8,000대 수준인 광주공장 세탁기 생산능력을 내년엔 115만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런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세탁기 부문의 R&D 핵심 인력들은 여름 휴가 기간 중에도 신제품 개발에 몰두할 계획이다.
"아들과 손자들도 근무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순 없잖아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야죠." 대우일렉의 미래 비전을 소개하는 강 공장장의 얼굴에서 굳은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광주=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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