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밑동을 안았는데 왜 우듬지가 먼저 기척을 하는지
언젠가 당신이 내 손을 잡았을 때 내게도 흔들리는 우듬지가 있음을 알았다
빠른 속도로 번지는 노을, 그 흥건한 물에 한철 밥 말아 먹었다 너무 뜨겁거나 매웠지만
상처라도 좋아라 물집 터진 진물에서 박하 냄새 맡던 저녁, 내 속으로 한 함지 되새 떼 쏟아져 날았다
손 닿지 않는 곳에 뭘 두었니? 당신을 숨긴 우듬지엔 만질 수 없는 새소리만 남아
어느덧 말라버린 무화과 꼭지처럼, 살이 쏙 내린 잔뼈로 이름만 얽어놓은 그곳, 닿을 수 없는
● 지극한 사랑을 할 때 저럴 것이다. 밑동을 안았는데 나무 꼭대기의 가지가 가늘게 떨리는 저 순간. 사랑인 것이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내 속에도 '흔들리는 우듬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저 지독한 순간.
'너무 뜨겁거나 매'운 그 순간, 상처의 진물에서도 '박하 냄새'가 나고 '내 속에서 한 함지 되새 떼가 쏟아져 날'아가는 그 순간. 그러나, 사랑의 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의 촉수는 아직도 날카롭게 서있는데 벌써 그 순간은 '만질 수 없는 새소리'로만 남아있다.
사랑의 순간은 그런 것인가, 고 묻는다. 전율의 순간, 낮밤이 바뀌던 순간, 세상의 환한 꿈이란 꿈이 한꺼번에 폭죽을 터뜨리던 순간. 그래서 사랑이 지나간 자리가 아무리 참혹해도 세월의 유랑자처럼 우리는 사랑의 순간 속을 정처없이 걸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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