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글로벌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이다. 세계를 정복하려면 우선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한다."
국내 식품업계의 대표주자 CJ제일제당이 중국에서 사활을 건 '맛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우리 기업에게 단순히 가깝다는 지정학적 의미를 뛰어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13억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거대 시장, 넓은 영토, 풍부한 자원과 원료 등‥. 중국은 세계를 무대로 치러야 할 전면전을 앞두고, 우리 기업들이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과 전술을 가다듬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CJ제일제당이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꺼낸 카드는 철저한 현지화이다. CJ제일제당이 청도식품법인을 설립하고 중국시장에 본격 진출한 것은 1995년. CJ는 진출 이후 두부 등의 가공식품에서 사료원료인 라이신 등 바이오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산기지와 마케팅 조직을 두고 철저한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두부에서 첫 번째 결실을 맺었다. 2007년 3월 베이징 최대 식품기업인 얼상그룹과 제휴해 '얼상CJ'를 설립하고, 얼상그룹의 두부 브랜드 '바이위(白玉)'에 CJ 로고를 새기고 영업활동을 시작했다.
'바이위'는 중국 정부가 선정한 400개 국가대표 브랜드 중 외국기업과 합작한 첫 번째 사례. 하지만 외국기업의 힘을 빌어서라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고 싶은 중국정부의 의지에 반해, 보수적 성향이 강한 중국 소비자들의 반발심 탓에 성공 여부는 불투명했다. CJ 내부에서도 우려를 표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지난해 1년 동안 얼상CJ의 두부 매출은 500억원을 기록,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지금도 베이징 통저우(通州) 공장에서 하루 평균 25만모 가량의 두부를 생산, 베이징권에 공급하고 있다.
CJ관계자는 "1,300만명이 거주하는 베이징에서 연간 1억8,000만모의 두부가 소비되는데, 이 중 CJ두부의 점유율이 70%에 이른다"며 "베이징 두부시장의 성공에 힘입어 앞으로 다른 대도시에까지 두부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며, 다시다와 레토르트 제품, 외식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조미료의 대표 브랜드 '다시다'도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연착륙에 성공했다. 2002년 중국 현지생산을 시작한 다시다는 우선 이름부터 중국어 발음으로 '다-시-다'에 해당하는 '大喜大'로 정했다. 중국인들이 닭고기 육수를 즐기는 것에 착안해 2006년 말 '다시다 계정(鷄精ㆍ닭고기 다시다)'을 내놓았으며, 결국 '대박'으로 이어졌다.
'닭고기 다시다' 출시 이후 매출이 2007년 110억원에서 2008년 16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230억원 대까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베이징 조미료시장 점유율 25%, 순위로는 2위에 해당한다.
곡물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8월 아시아 최대 곡물기업인 베이다황그룹과 공동으로 곡물가공사업 합자법인 '베이다황CJ'를 하얼빈에 설립했다. 또 4월부터 벼 재배 산지인 우의와 위성 2곳에 현미유 제조공장을 10월 완공 예정으로 건설하고 있다. 이들 공장에서는 항산화성이 높고 풍미가 좋은 고급유인 현미유를 생산한다.
또 현미유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인 탈지 미강(米糠ㆍ지방이 제거된 쌀겨)을 600㎞ 떨어진 하얼빈으로 이송, 현대식 인프라가 완성된 하얼빈 쌀 단백 공장에서 쌀 단백질을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CJ제일제당-베이다황그룹의 최대 관심사는 하얼빈 쌀 단백질 생산공장이다. CJ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쌀겨에서 단백질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대량생산을 위해 안정적으로 곡물을 공급할 수 있는 베이다황그룹을 파트너로 지목했다.
12월 완공을 앞둔 쌀 단백질 생산공장은 총 면적 12만2,000㎡(3만6,000평) 규모로, 연간 1,200톤의 쌀 단백질을 생산할 예정이다. 세계 최초로 쌀을 소재로 하는 고부가가치 사업화 모델이라는 게 CJ 측의 설명이다.
베이다황CJ 관계자는 "쌀은 밥 짓는 용으로 쓰이는 백미나 현미, 기름(현미유) 외에도 고급 기능성 식품의 소재인 쌀 단백질, 기능성 당, 식이섬유와 화장품 원료인 세라마이드, 피틴산, 친환경 사료(쌀겨)로도 쓰일 수 있는 고부가가치 곡물자원"이라며 "식품용 단백질 및 현미유, 쌀 식이섬유 시장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2조6,000억원에 달하며, 매년 15%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CJ 측은 쌀겨 단백질 추출기술과 현미유 가공능력 등 CJ제일제당이 보유한 기술력에 베이다황의 안정적인 원료 공급이 더해지면 향후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 진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진수 CJ제일제당 대표이사는 "베이다황CJ의 하얼빈 공장을 기반으로 더욱 다양한 곡물가공 분야에 진출해 '쌀가공 분야 글로벌 넘버원'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겠다"면서 "중국시장은 글로벌 시장 진출의 전진기지이며, 중국시장의 성패 여부가 향후 한국음식 세계화의 중요한 잣대가 되는 만큼 넘버원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 박근태 CJ중국그룹 대표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위한 첫 걸음은 중국인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5~10년 후를 내다보는 상품전략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철저한 현지화가 뒤따라야 한다."
박근태(사진) CJ중국그룹 대표는 20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유수의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CJ의 경우 중국 전체 사업의 90%가 내수 상품이어서 안정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CJ 본사는 중국시장을 낙관적으로 평가해 향후 5년간 총 50억위안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며 "광활한 중국시장에서 '제2의 CJ 건설'을 목표로 CJ그룹 총 매출의 절반을 중국에서 달성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CJ는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위해 우선 중국인과 눈높이를 맞추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다시다'이다. CJ는 식품사업을 중심으로 1995년 중국시장에 처음 진출했고, 그 첫 번째 도전에 나선 브랜드가 바로 '다시다'였다.
처음엔 한국 조미료시장 점유율이 80%나 되는 다시다를 통해 중국사업의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박 대표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는 소고기맛 다시다가 으뜸이었지만, 중국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며 "중국 조미료시장에서는 '계정(鷄精ㆍ닭고기맛 조미료)'의 수요가 높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다 계정'을 출시하면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80% 급증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다시다 계정은 현재 베이징을 포함한 허베이(河北)성 소매시장에서 25% 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CJ는 소고기맛 다시다의 참패를 교훈 삼아 다른 사업 군에서도 철저한 중국시장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CJ가 중국시장에서 추진 중인 핵심사업은 식품ㆍ외식 서비스업 외에 생명공학과 신유통, 엔터테인먼트 등 4가지.
박 대표는 "중국에선 성(省) 하나의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 전체와 맞먹는 곳이 많다"며 "현실적으로 중국 전역에서 동시에 하나의 성공신화를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에 우선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동베이(東北) 3성을 중심으로 성공모델을 만든 뒤 장기적인 시각에서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면대면(面對面)'전략을 실행에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박 대표는 "다양한 상품 군에 모두 CJ의 브랜드를 붙여 통합브랜드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계획"이라며 "우수 제품 군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투자와 마케팅을 강화하고 중국 현실에 맞는 제품들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