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동시 점거에 따라 국회 본회의장에 '보초'로 남겨진 의원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밤새 싸우지는 않는지, 잠은 자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궁금하다. 다음은 방청석에서 본 엿새 간의 본회의장 기록.
합의 수박? 독약의 수박?
16일 오후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서면서 같은 당 의원들에게 "나와서 수박 좀 들어요"라고 하자 차명진 의원이 "민주당 의원이 먼저 나가면 따라갈게요"라고 농을 던졌다. 고 의원이 민주당 의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가 "존경하는 민주당 의원님들 가서 수박 좀 드세요"라고 하자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가장 가난한 환노위 위원장이 살 테니까 제 이름으로 달아놓고 드세요"라고 웃으면서 맞받아 쳤다.
옆에 있던 민주당 최규성 의원이 "화합의 수박 먹을까. 화합이 될지 독약이 될지 모르지만…"이라며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나 최 의원이 잠시 후 "먹으면 (법안전쟁에서) 질 것 같아서 안 먹을래" 라며 자리로 되돌아와 앉았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에서 마련한 수박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들에겐 독약의 수박이었던 셈이다.
차명진 대 강기정
제헌절 행사를 앞두고 여야가 본회의장에 원내부대표 2명씩만 남기기로 합의한 16일.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이 소식을 전하며 "오늘 당번인 사람들 봉 잡았다. (여야가) 가장 최근에 한 합의네"라며 웃었다. 당번 선택의 전권(?)을 위임 받은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는 누굴 남길지 고민했다.
한 의원이 "평소에 맘에 안 들었던 사람 뽑아요"라고 말하자 김기현 장제원 의원이 "차명진 의원이 일당백이야"라고 차 의원을 강력 추천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차 의원이 이 얘기를 듣고 "난 (민주당) 강기정 의원한테 못 당해"라고 말했다. 멀찌감치 떨어진 강 의원은 묘한 미소를 보냈다. 물론 아직까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 두 의원의 '단상 점거 능력'과 '단상 점거 저지 능력'을 확인할 수 없다.
농성화는 필수
정장 차림으로 독서 중이던 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은 당 조영택 의원이 박 의원의 흰 운동화를 보고 "왜 운동화를 신고 다녀요"라고 묻자 지나가던 이석현 의원이 "농성화야. 유사시를 대비해서…"라고 연륜이 배어나오는 답을 했다. 연말연초 본회의장 점거 경험을 바탕으로 박 의원은 농성이 시작된 15일부터 운동화를 신으며 만반의 준비를 다했던 것이다.
지역구 관리 즉석 과외
3선의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20일 본회의장을 지키며 같은 당 재선인 박순자 최고위원에게 지역구 관리 노하우를 전수해 줬다. 원 의원은 "아주머니들과는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으면서 '요새 학원 문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처럼 관심사를 던져 대화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주물러 드리면서 얘기하면 좋아하더라"며 지역구민과의 스킨십 강화를 팁으로 알려 줬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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