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 문화예술 분야다. 가정에서는 수입이 줄어도 생필품비 의료비 교육비는 지출하지만 우선적으로 문화비를 줄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경기침체로 작년 기업 메세나 활동 지원비가 2007년보다 11.5%나 줄었다고 한다.
최근 한국 메세나 협의회 7대 회장으로 재신임된 박영주 회장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나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해 장기적인 투자는 주저한다.
고대 로마나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 부흥은 문화예술 분야의 후원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메디치가 대표적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례가 많았다. 특히 조선후기의 신재효와 대원군은 판소리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다. 동리 신재효 선생은 부친 때부터 축적한 재산을 판소리를 활성화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데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 자신 탁월한 이론가이며 교육가였다.
구전으로 전해오던 판소리 여섯 마당의 사설을 정리하였고 판소리를 배우는 광대들을 불러 모아 숙식을 제공했다. 그의 문하를 거친 명창은 수없이 많다. 당시 판소리는 저자거리로부터 경복궁 어전에까지 펼쳐졌던 놀이 예술이었다. 대원군은 누구보다 판소리를 즐겼던 사람으로 광대의 지위향상에 앞장섰다. 그의 후원을 받은 박유전과 박만순은 각각 서편제와 동편제를 창안한 명창이다.
기업가들이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분야에 관심을 갖고 좋아한다면 더욱 바람직한 일이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판소리 애호가였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도 예술품에 관심이 많았을 뿐 아니라 판소리를 즐겼다. 생존하는 판소리 인간문화재들은 이병철 회장의 도움을 회고하곤 한다.
나는 한류로 인해 한국의 대기업들이 가장 덕을 보았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베트남 화장품 시장의 70%, 중앙아시아 가전시장의 80%를 한국기업이 차지하게 된 배후에는 한류가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한때 '딴따라'로 치부했던 광대들이 지금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한류스타'로 변신했다. 대중문화 수출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관광, 상품 수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국가이미지 제고에 영향을 미치는 한류는 국익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신성장 동력이다.
한류가 번성하면 세계인이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좋아하게 되고, 한국 상품은 프리미엄을 얻으며, 한국을 방문하게 되고, 라이프스타일마저 한국식을 선호하게 된다. 김치와 비빔밥을 비롯한 한국음식이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뜨끈한 온돌 맛에 길들여지고, 한글을 배우며 한국어를 학습하는 세계인이 늘어난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를 체계화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먼저 기업이 문화예술의 지원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한류 열기가 식으면 기업도 손해다. 기업이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앞장서면 그 혜택이 기업에 돌아갈 것이다. 아울러 한동안 주춤했던 한류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한류산업은 발전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메세나 운동의 시대정신이 아닐까 한다. 금호그룹이나 대성그룹, 우림건설처럼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또한 동리 신재효, 인촌 김성수, 고 이병철 회장같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분들도 많아져야 한다. 한국적 메세나 운동을 통해 한류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기를 희망한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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