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나 스웨덴은 대표적 선진국이다. 국민소득이나 문화, 복지, 삶의 질, 행복지수,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탁월하다. 얼마 전 이 나라들을 방문하고 돌아 온 교수들의 얘기는 듣기 좋지만 신기롭다. 아닌 줄 알았는데 한국도 이미 선진국이더라는 것이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시스템은 오히려 한국이 더 나았다는 이야기다.
정체성 불안 드러나
사실 우리가 안에서 우리 자신을 보는 것보다 바깥에서 우리를 훨씬 더 잘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는 많다. 후발국가의 이점이라고 할까. IT 기술과 산업의 비약적 발전, 정보화와 인터넷 접근성 확산, 눈 깜박할 사이에 새 모델이 나오는 역동적인 한국 제품들이 그런 예다. 최근 산업정책연구원의 조사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기술력, 한국음식 순으로 나타난 것이나, 업종별 선호도에서 한국 휴대폰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그다지 의외는 아니다.
선진국 도약에 대한 강박관념이 우리만큼 강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말 자체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후진국이란 말은 쓰라린 과거를 상징한다. 한민족의 한이 서려 있다. OECD 가입을 두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하거나, 앞으로 몇 년 안에 GDP가 얼마를 못 넘으면 선진국 진입은 물 건너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강박관념의 발로다. 우리처럼 선진국이란 말이 사회적으로 순순히 수용되고 오래 통용되어 급기야 정치이념의 반열에 오른 경우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우리나라가 아직 후진국이라는데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미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매우 드물다. 이 역설적 현실은 우리의 정체성 불안을 드러낸다. 그러기에 우리가 선진국으로 부르는 나라들보다 더 나은 점을 발견하면 놀랍고 신기한 게 아닐까.
선진국 강박관념은 꼭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이제껏 그래왔듯이 사회발전과 역사진보를 향한 열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구미 선진국을 뒤쫓아가야 한다는 의미의 강박관념보다는, 지금 사회 구성원들 스스로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폭 넓은 사회적 각성이 더욱 절실하다.
비단 '해머국회'나 개고기, 노사분규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교통질서 의식은 아직 수시로 서로 낯을 붉혀야 하는 수준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쇼핑 몰, 아파트 구내 등에서 요란한 음악을 틀고 고함치듯 호객 행위를 하는가 하면, 자전거길이 따로 있는데도 밤에 산책 나온 사람들 사이를 불도 켜지 않은 채 씽씽 헤집고 달린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내던지는 뻔뻔스러운 짓도 예사로 자행한다. 이 몇 가지만 봐도 선진국은 아직도 요원하다.
정부는 이런 일들을 '기초질서' '법질서' 차원에서 위로부터 '확립'하려 하지만, 이것은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확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화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실은 어떤 문화인지가 문제다.
우리에게는 한글과 금속활자, 고려청자, 고궁, 한복, 추사와 안견, 신윤복, 그리고 백남준.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 많다. 얼마 전에는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기쁨도 있었다.
서로 존중하는 사회계약을
그러나 아무리 찬란한 문화유산이 있더라도 왕릉 경내에서 삼계탕을 끓여 먹는 직원들이 있는 한 소용이 없다. 밖으로 내세우는 멋진 문화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살아있는 문화,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대접하는 내면의 문화가 중요하다.
서로 함부로 대하고 막가는 사회로 함께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서로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한다는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다시 만나야 선진국 강박관념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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