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가 서서히 매미 소리에 덮이기 시작했다. 지난 주 주기적으로 쏟아진 빗줄기가 대지의 단단한 껍질을 풀어헤치고, 땅속 깊이 스며든 덕분일 게다. 지난해에 이은 매미 관찰이 다시 시작됐다. 밤이 늦도록 아파트 단지 안의 나무와 풀섶을 살펴 어둠 속에서 하얀 꽃이 피어나는 듯한 매미의 우화(羽化)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이다. 참매미든 말매미든 크기만 달랐지, 똑 같은 모습인데도 물리지가 않는다. 볼수록 신비롭고, 유전자에 각인된 생명의 지혜가 새삼스럽다. 진화론의 근간인 '자연선택'의 한 단면을 엿본 듯한 기쁨도 만만찮다.
■매미의 일생은 위험이 가득하다. 나무껍질 속의 알이 부화하면서 곧바로 생명의 위협이 시작된다. 개미의 정찰을 피해야 땅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다. 땅속은 두더지나 병원체의 위협이 있지만 비교적 안전하다. 대신 5~8년이나 되는 오랜 땅속 생활 기간이 위험 확률을 제자리로 되돌린다. 땅 속에서 네 번 허물을 벗은 굼벵이가 '종령(種齡)' 상태로 땅 위로 기어 나오면서 위험이 본격화한다. 달팽이처럼 느리고, 덩치는 커서 눈에 띄기 쉽다. 우화 직후는 더욱 위험하다. 하얀 날개가 두드러지는데도 전혀 날지 못해 새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그런 모든 위험을 헤쳐 나온 매미만이 울음으로 짝을 찾고, 유전자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런 본능적 지혜의 핵심은 때를 아는 데 있다. 장마철이 1차적 기준점인 듯하지만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대개의 새들이 날개가 묶이는 밤 사이에 대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우화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일몰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도 밤 시간을 택하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빛을 감지할 수 있다고 될 일이 아니다. 태어나서야 연월일시 사주(四柱)가 주어지는 인간과 달리 스스로 좋은 '사주'를 택한 매미만이 태어나서 살아 남는다.
■'자연선택'을 통해 적절한 우화 시기를 모르는 매미, 밤낮을 모르는 매미는 거의 도태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확하게 제 철을 파악하지 못하는 불행한 매미는 있다. 보름 전에 참매미 한 마리의 우화를 관찰했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매미소리를 들은 것은 열흘이나 지난 후였다. 짝짓기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너무 늦게 우화하는 놈도 유전자를 남기기 어렵다. 자연히 매미는 비슷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우화하도록 진화해 왔다. 그런 매미에 비해 만사에 때를 모르는 '철부지' 인간과 시대착오적 행태는 너무 흔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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