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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철학포럼 '21세기 씨알사상 의미' 대담/ 오가와 하루히사 교수·박재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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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철학포럼 '21세기 씨알사상 의미' 대담/ 오가와 하루히사 교수·박재순 소장

입력
2009.07.21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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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철학자들이 씨알사상을 화두로 한 자리에 모였다. 재단법인 씨알(이사장 김원호)과 교토포럼 공공철학연구소는 유영모(1890~1981)와 함석헌(1901~1989)의 사상에서 현대문명의 대안을 찾는 제1회 한일철학포럼을 19일부터 전남 목포대에서 열고 있다. 23일까지 계속되는 포럼에는 양국의 철학자 26명이 참여해 씨알사상에 내포된 다원주의와 평화주의, 생태사상 등을 토론한다.

참석자 명단에는 오가와 하루히사(68) 교수가 포함돼 있다. 도쿄대에서 정년을 한 후 닛쇼가꾸샤(二松學舍)대에 재직 중인 그는 한국의 실학을 비롯한 동아시아 근ㆍ현대사상 연구의 권위자다.

오가와 교수는 최근 유영모의 사상에 심취, 일반인을 상대로 한 도쿄시민강좌에서 1년 동안 씨알사상을 강의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이번 포럼에서 유영모의 번제(燔祭ㆍ육체적 존재를 죽여 영적인 존재로 변환시킴) 사상을 현대적으로 조명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다.

오가와 교수가 박재순(59) 씨알사상연구소 소장과 20일 목포에서 만나 씨알사상이 21세기에 가지는 의미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기독교 신학을 전공한 박 소장은 한신대, 성공회대 교수 등을 역임하고 씨알사상을 철학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가와 교수는 "박 소장이 쓴 <다석 유영모> (2008)를 읽고 번제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1세기 문명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진정한 인간'이며, 씨알사상의 핵심은 그 인간을 위한 실천 담론"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박재순= 오가와 교수님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근ㆍ현대를 폭넓게 연구하셨지요. 숱한 철학 담론과 철학가들을 접하신 걸로 압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안창호(1878~1938)나 이승훈(1864~1930), 유영모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신 걸로 압니다. 이들의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씨알사상은 아직 한국에서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주류 학계에서는 오히려 배척하는 분위기도 있지요. 그들의 사상에 다른 철학에서 살펴볼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까.

오가와= 나는 20~30대에 마르크스사상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유물론자입니다. 그러나 이제 체제 대립이나 냉전은 끝났습니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심화 중이라는 현실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제도나 사상의 문제를 초월해서, 지구 생태계의 위기가 그것입니다. '생태계 보존과 유지'라는 의무를 전제하지 않았다면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에 대한 깊은 평가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이들의 사상이 생태위기를 극복할 대안 사상과 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순= 씨알사상과 생태사상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입니까. 유영모 등은 생태 담론을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올바른 인간의 길,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공동체 운동에 초점을 맞췄는데요.

오가와= 안창호는 독립운동가였지요. 그는 독립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의 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맥을 이어 유영모는 '육체적인 나를 버리고, 영적인 나를 지향하는 일'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번제 사상으로 발전되는데, '전신(全身)의 연소'라는 표현처럼 욕망을 줄여서 고결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영모는 그것을 위한 검소한 생활의 실천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지구 생태계를 지키는 가장 적합한 대안일 겁니다.

박재순= 그렇게 보면 생태의 문제와 도덕의 문제는 맞닿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군요. 유영모 등은 '인간'을 중심에 놓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나라를 세우는 원칙이자 도덕의 원칙, 그리고 해방의 원칙으로 제시했습니다. 조직운동이나 정치투쟁보다 그것을 강조했죠. 그것이 사회적으로 실천적 효과가 있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씨알의 정신은 자기의 삶과 사상을 통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석헌이 말했듯이 '생각하는 백성이 돼야 한다'는 것이죠.

오가와= 그런 측면에서 씨알사상은 일본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겁니다. 일본에는 제대로 된 도덕 교육이 부재합니다. 민주주의 세력, 또는 좌파 세력은 평화헌법의 존재에 파묻혀 도덕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교육하는 데 소홀합니다. 헌법만 있으면 된다는 거죠. 하지만 2~3년 안에 그 헌법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우익 세력은 도덕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진정한 도덕과는 거리가 멉니다. 도덕과 정의를 '인간'의 첫번째 요소로 중시한 안창호의 사상은, 어쩌면 아주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박재?/b>= 씨알사상과 같은 독창적 사상이 한국에서 생겨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한 사상의 통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왕조 몰락과 식민지배 등으로 통제력의 공백 상태가 있었죠. 뚜껑이 다 열린 상황에서 과학문명과 기독교가 자유로이 흡수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통 사상과 만나면서 동ㆍ서양 사상이 융합한 독특한 철학체계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통제력 부재의 조건은 민중 중심의 사상이 가능한 배경이 되기도 했어요. 씨알이 주체이고 씨알을 섬겨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첨단의 사상이죠.

오가와= 그것을 일본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생태계 보존과 고결한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론. 두 차원에서 씨알사상은 현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목포= 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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