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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시행 20일/ 인천 남동공단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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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시행 20일/ 인천 남동공단 르포

입력
2009.07.1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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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사람 구하느니 숙련공 그대로 쓰는 게 훨씬 나아"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규정이 시행된 지 보름이 지난 16일. 5,000여개 중소기업 제조 공장이 몰려 있는 인천 남동공단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540만 비정규직의 94%가 일하는 중소기업에서 해고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노동부의 진단과 달리, 현장에서는 대란 조짐을 느낄 수 없었다. 꽤 많은 기업이 '조용한 정규직 전환' 조치를 이미 취했거나, 더 많은 곳에서 사업주와 근로자의 합의 아래 '법보다는 일자리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

비정규직 20명을 고용한 자동차ㆍ건설장비 부품업체 A사는 아르바이트로 고용 형태를 전환했다. 이 업체 근로자 B씨는 "근로기간을 명시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대신, 예전처럼 출근해서 할당된 물량을 채우면 돈을 받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회사는 원래 일한 성과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계속 일할 수 있다면 고용 형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직원 90여명의 자동차 부품업체 C사는 최근 '근속 2년 이상'인 30여명 파견 근로자의 소속을 바꿨다. 인건비 부담을 무릅쓰고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숙련 인력을 내보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땅히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는 30여명 근로자도 회사 사정을 이해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체 D사는 아예 불법을 불사하는 경우다. 지난달 계약기간 2년을 채운 비정규직 3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았는데도, 계속 출근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나중에 이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문제가 된다는 것도 알지만, 이 불황에 공장을 꾸려 가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한 달에 200만원 이상 주는 곳을 그만 두고 새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만큼 근로자들도 불평이 없다"고 전했다.

자구책 대응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으로 전환해준 기업도 있다. 남동공단 북쪽에 자리잡은 E사가 대표 사례다. 16일 오후 991m²(300평) 규모의 E사 공장을 찾았을 때 10여명 직원이 구슬땀을 흘리며 금형기계를 돌리고 있었는데, 표정이 모두 밝았다. 비정규직법 시행에 앞서 지난 5월 비정규직 4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줬기 때문이다.

이 업체 사장은 "열 명 남짓한 우리 같은 영세기업에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이가 뭐가 있겠느냐"며 "금형 일이란 게 손기술이 필요하고 성실한 자세가 필요한 만큼 열심히 일해온 근로자를 우리 식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불황으로 수주물량이 지난해보다 30%나 줄어 1억원 적자를 봤지만, 안정적 인력 확보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득이 될 거라고 판단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인근의 금속가공 및 도금업체인 F사도 지난 5월 1년간 함께 일한 파견업체 직원 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 업체 사장은 "정부에서는 해고 대란을 얘기하고 계약기간 연장을 주장하는데, 영세기업은 정규직, 비정규직의 부담 차이가 크지 않다"며 "정부와 국회가 대기업 납품으로 연명하는 중소기업이 현실적인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지원금만 준다면 정규직 전환은 물론 근로환경 개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법 대응책은 다르지만,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서는 남동공단 입주 업체들 모두 불만을 터뜨렸다. 직원 75명 중 25명이 파견근로자라는 한 통신기기 업체 관계자는 "성실하기만 하면 파견업체에 수수료를 주고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할 마음이 있다"며 "비정규직 해고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중소기업이 정규직 전환에 적극 나서도록 지원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우리와 사정이 다른 공기업 사례를 내세워 해고 대란을 얘기하는 게 황당하다"며 "노동부가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업체의 사정을 알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 지역을 담당하는 경인지방노동청 관계자는 "사안이 민감하다 보니 많은 중소기업이 실상을 감추려 하는 경향이 있다"며 "솔직히 어디에 어느 정도의 비정규직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인정했다.

한편, 비정규직 해고 규모가 노동부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노동계를 중심으로 정책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를 해고하고 다시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기존 숙련공을 쓰는 게 더욱 유리하다"며 "노동부는 '100만 해고설'을 폐기하고, 중소기업이 더 수월하게 정규직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차이가 크지 않고 노동유연성 확보 부담이 적은 중소기업은 정규직 전환이 도리어 쉽다"며 "노동부는 '파악은 안되지만 해고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식으로 해고설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 정?지원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 해고 비정규직 '힘든 생존투쟁'

17일 오전 서울 S구청 취업지원센터의 '비정규직 실직자 전담 상담 창구'. 잠시 머뭇거리던 P(55)씨가 마음을 다잡은 듯 창구에 앉았다. 그는 유통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분류 및 자재관리 업무를 하다 계약기간 2년이 지난 이 달 초 해고됐다. P씨는 "나이는 많지만 열심히 일해 와 무기계약직으로 변경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허사였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담당자에게 "생산 관련 업무라면 어떤 일이라도 좋으니 꼭 좀 취직을 시켜달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발걸음을 뗐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규정 탓에 해고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새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루한 정쟁만 되풀이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접은 지 오래,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지만 구직 행보가 순탄치는 않다.

지자체나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지원센터를 방문해 직장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날 오후 노동부 산하 강남종합고용지원센터 채용정보실에도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눈에 띄었다. 정보통신업체에서 사무 관련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지난 4일 해고됐다는 C(32)씨는 "실업급여 대상이 되는지도 알아보고 구인 정보도 알아볼 겸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 센터의 조경하 운영지원팀장은 "최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취업 문의가 급증해 전담창구를 만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해고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새벽 인력 시장에도 몰리고 있다. 수도권의 한 인력시장 관계자는 "최근 일자리 구하려는 사람이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는데 30~50대가 많다. 최근 해고된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존에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직종에, 전보다 줄어든 임금도 가릴 형편이 아니다. 30여년간 대기업 계열사에서 우편물 분리ㆍ배달 업무를 하다 지난달 말 해고된 H(54)씨는 최근 지인의 소개로 골프장 잔디 관리 일을 하고 있다. 역시 비정규직인데다가 월급은 120만~130만원대로 전보다 절반 이상 줄고 일도 생소하지만, 그는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당한 요구를 감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금융 공기업에서 일하다 지난달 30일자로 해고된 K(39)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차렸다. 기업 측에서 "사용기간 연장안이 통과되지 않아 쓸 수 없다. 계속 일하려면 업체 파견 형식밖에 없다"고 말해 해고자 9명이 파견업체를 만든 것이다.

부당한 요구지만 일을 계속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게 K씨의 설명이다. 여수의 한 공기업에서 비정규직 5명 중 4명이 노조를 탈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장이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노조 탈퇴'를 내세웠던 것. 결국 '정규직 전환'이 노조 와해용 카드로 악용된 셈이다.

각자 살 길을 찾기보다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이들도 주목을 끌고 있다. 노동부 산하의 한 산재병원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하다 해고된 L(35)씨는 "17명 해고자 전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고 소송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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