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성들이 웅장할지 몰라도 성곽의 색깔만은 화성이 단연 으뜸이다. 성벽의 무수한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깔은 황홀경 그 자체다."
전문의 출신 90대 사진작가가 경기 수원 화성(華城)박물관에서 17일부터 한달간 '화성을 걷다, 화성을 보다'라는 제목의 특별한 사진전을 연다.
주인공은 1918년 수원 화성행궁 앞 종로의 잡화상 집 아들로 태어나 화성을 놀이터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김동휘(91)옹. 김 옹은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고 수원에서 산부인과를 개업, 운영하다 6ㆍ25 전쟁 때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카메라를 처음 접한 뒤 청진기보다 카메라를 더 가까이 하게 됐다.
그는 전후 화성을 담을 때에는 그저 사진을 찍는 게 좋았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화성에 생긴 생채기를 기록해야 겠다는 의지가 싹 텄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렌즈 안으로 들어오는 무너진 화성을 보면서 슬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며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잊혀지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의무감이 들어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화성이 더 망가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1950년대 중반부터 무너진 성곽의 처참한 모습, 성곽을 훼손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을 필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김옹은 "문화재는 보수관리하지 않으면 부서지게 돼 있다"면서 "일제가 일부러 기왓장을 뒤집어 비가 새게 하는 등 행패를 부렸지만, 성벽을 허물어 부뚜막으로 사용하고 건축물을 부숴 땔감으로 쓴 우리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97년 용인에 세운 등잔박물관을 화성 동복공심돈을 본 따 지었을 정도로 화성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이번 전시회에는 수원시에 기증한 50~60년대 화성 옛 사진 86장 중 30여장이 공개된다. 현재 전하는 화성의 옛 사진은 김 옹의 사진과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제작한 사진엽서, 독일인 헤르만 산더, 미 육군 엔지니어출신 게리 헬센의 작품이 전부라고 한다.
김 옹은 수원문화원 창립 주역으로 한국예총 경기지부장을 역임했고 89년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해 2003년 행궁 576칸 중 482칸이 복원되는 토대를 놓았다.
노환으로 7,8년 전 카메라를 놓을 때까지 전 세계를 돌며 사람들의 얼굴을 필름에 담아 '인간 가족전'을 열기도 한 그는 국전 사진부문에서 4년 연속 입선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 받고 있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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