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우가 쏟아진 지난 17일 오후 서울 양재천 영동 5교 부근. 하천 곳곳이 물이 넘치고 여기저기 흙이 무너져 내렸지만 이 곳만은 무사했다.
비밀은 블록에 있었다. 둔치 경사면에 설치된 블록 사이사이로 빗물이 즉각 빠져 나가버린 것이다. '폴라카블'이라는 이름의 이 블록을 만든 삼오포레스는 건설 현장에 버려진 돌덩어리를 제오라이트라는 광물질과 함께 뭉쳐 둥근 모양을 냈다. 시멘트와 달리 독성이 없는데다 물과 공기가 잘 통하고 수질 정화, 식생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청계천, 양재천, 금천구 체육공원의 물고기 통로, 가로수 보호대 등으로 쓰이고 있다. 폴라카블을 시공ㆍ판매하는 루펜큐는 최근 대만 업체와 10만 달러어치 수출 계약도 맺었다.
#2. 스위스 가방 '프라이탁'은 30만원 이상에 팔리며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 가방은 '쓰레기'로 만들어 졌다. 가방 몸체는 화물차 덮개로 쓰던 천막으로, 가방 끈은 안전 벨트를 활용했다. 튼튼하고 방수도 가능해 실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다 천에 새겨져 있던 글귀나 그림이 가방 몸체에 그대로 쓰여 '세상에 하나 뿐인 가방'이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대박이 났다.
쓰레기가 산업계의 '효자'로 거듭나고 있다. 페트병, 폐목재, 폐타이어는 물론 왕겨, 돌 덩어리까지 어느 것 하나 내다버릴 게 없다. 합성 목재, 시멘트, 블록 등 건축 자재부터 옷은 물론 가방 등 패션 아이템까지 쓰임새도 다양하다. 폐기물을 상품화하는 또 하나의 '녹색산업'인 셈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폐기물 재활용 사업은 버려진 자재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오염 물질 발생을 막아줌을 물론 자원 절약 및 부가 가치 또한 높아 다가올 녹색시대의 대표적 '블루오션'으로 꼽히고 있다. 더구나 환경부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제품ㆍ포장재 별 재활용 의무 비율을 고시했기 때문에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하는 사례는 더 늘 전망이다.
논밭에 버려진 왕겨도 '보물'로 거듭난다. 강원 횡성의 동해산업은 농축산 폐기물인 왕겨를 목분, 고분자수지(폴리머레진) 등과 함께 압출성형해서 친환경 합성 목재 '클릭우드'를 만들었다. 이 제품은 휘거나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나무의 단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다른 합성 목재처럼 불에 잘 타거나 중금속 유출 위험도 없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어 전국 지방자치단체 등 관급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하천 정비, 자전거 도로 건설 붐이 일어나며 전망은 밝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버려진 페트병은 친환경 섬유로 재탄생 옷 만드는데 쓰이고 있다. 웅진케미칼의'에코웨이(ECOWAY)'는 페트병, 필름 등 폴리에스터 제품을 잘게 잘라 조각을 낸 뒤 열을 가해 칩으로 만들고 이 칩을 방사가공해서 뽑아낸 실로 만들었다.
제작 방법이 간단하고 생산 단계를 줄일 수 있어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일반 폴리에스테르 이상으로 염색성이 좋아 색을 잘 내고 기능성 원사와 섞을 경우 야외 활동복으로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블랙야크', '프로스펙스' 등 레저 스포츠 브랜드에 많이 쓰이는데 아웃 도어 의류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덩달아 상종가이다.
버려진 목재도 새 생명을 얻고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동화기업은 가구 원료인 파티클보드(PB)를 만들 때 폐목재를 활용하고 있다. 동화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폐목재를 활용해 원목 수입 대체(1,400억원)와 소각 비용 절감(840억원) 등 경제적 효과를 2,200억원 가까이 얻었다"면서 "해 마다 원목 수입 대체 효과는 300억원씩 늘고 있다"고 전했다.
버려진 타이어, 주물사, 철강 슬래그 등 온갖 폐기물을 재료로 쓴 동양시멘트의 '에코 시멘트'는 '폐기물 종합 선물 세트'라 불린다.
해 마다 50만 톤 가량의 폐기물을 활용하고 있는데 시멘트 생산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연탄과 부 원료의 30% 이상을 폐기물로 대신 쓰는 한편 섭씨 1450도가 넘는 고온의 소성로에서 폐기물을 태워 나온 열로 시멘트를 제작한다. 부성리싸이클링은 버려진 타이어를 놀이터와 공원, 산책로, 자전거 도로 등에 많이 쓰이고 있는 고무 블럭을 만들고 있는데 모래, 규사 등 다른 물질을 섞지 않았기 때문에 2차 재활용도 가능하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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