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잃은 것보다 우리의 '빨리빨리' 사고, 물량주의와 성과주의에 매몰된, 빗나간 알피니즘 현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그 무엇이 매우 유능하고 촉망되는 여성 산악인 하나를 죽음으로 몰았던가 돌이켜볼 일이다.
안타까운 고미영의 서두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계14좌 완등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다 낭가파르바트 '운명의 산'에 묻힌 고미영의 희생은 우리 산악계, 그보다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그를 아껴온 많은 사람들이 탄식한다. 왜 그렇게까지 서둘러야 했는지, 그 방식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그리고 우리 언론의 경마식 보도는 과연 옳은 것인지 묻고 싶다.
히말라야 셰르파들은 한국인만 보면 흉을 보듯 '빨리빨리'를 외친다. 고산 등반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비스타리(천천히)'와 확연히 비교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원정대에 한국일보 기자로 참가했을 때 한국식 강행군이 건설현장에서만 아니라 고산 등반에서도 세계적인 화제가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등정 30주년을 기념하여 박영석 원정대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다시 찾으면서 순수한 등반 정신이 상업주의에 찌든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산에 오르는 자유와 여유가 사라진 것도 그렇지만 우리 산악인들이 올림픽 금메달 다투듯 정상으로, 정상으로 향하는 그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2년 전 그 때만 해도 로체샤르에 오르는 엄홍길, 에베레스트로 가는 허영호, 박영석 원정대가 경쟁하듯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낭가파르바트 원정에서도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 경쟁을 펼치는 오은선과 고미영이 서로 다른 팀으로 참가하여 4시간 차이로 정상에 오르고 있었다니 경쟁심이 없었을 리 없다. 고미영의 경우 올 한 해에 마칼루봉에서 시작하여 8,000m 4개 봉에 올랐으니 최단시간 최다봉 기록에 과연 찬사만 보내야 했는지 모르겠다.
젊은 시절 탐독했던 산악문학의 명저들, 그 가운데 헤르만 불의 <8,000m의 위와 아래>는 등산이 스포츠와는 다른 영역으로, 자연에 대한 사랑과 정신적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또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라인홀트 메스너(최초의 14좌 완등)의 <검은 고독, 흰 고독> 에서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죽음 앞에 직면한 사실적 고백을 담고 있다. 검은>
낭가파르바트에서 사랑하는 동생을 잃고 나서 다시 도전에 나섰던 메스너는 평균경사도 60%인 난공불락의 루팔 벽 앞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몸이 마비된 듯 혼자 소리쳤으나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나를 사로잡은 공포감이 몸으로 느껴졌다. 무서워서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필사적인 몸부림이 전신에 소용돌이쳤다. 그것은 추락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 고독 속에 나 자신이 꺼져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였다.'
그 공포의 벽에서 흩어져버린 고미영의 '치열한 삶과 고귀한 죽음'을 깊이 생각해보자. 진정한 산악인은 자신이 언젠가 희생자가 되는 줄 알면서도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머머리즘(Mummerism)의 참 뜻을 이해해야 한다.
진정한 알피니즘 회복되길
필자는 지난날 한국을 찾았던 위대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 경(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이나 모리스 에르조그(세계 최초 8,000m급 등정)와의 만남에서도 진정한 알피니즘의 핵심이 '대자연의 공포를 물리치는 인간의 불굴의 의지'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낭가파르바트의 비극, 고미영의 희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순수한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무리한 경쟁심은 금물이라는 사실이다. 일부 방송의 성급한 보도경쟁으로 네티즌의 화살을 받았던 사실도 되새겨볼 일이다.
이태영 77 한국 에베레스트대원ㆍ 경희대 겸임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