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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4> 민주화운동에 재심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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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의 나의 꿈 나의 도전] <4> 민주화운동에 재심이 필요할까?

입력
2009.07.1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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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민주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못해 적대적인 경우조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글을 쓰려니 자괴감이 앞서,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소회를 밝혀두고자 한다.

민주세력이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위 민주세력의 집권이라는 역대 정부가 국민을 실망시킨 때문이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민주세력의 일부이긴 하나 민주화운동의 대의에 어긋나는 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민주화투쟁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군사독재정권의 조작에 의한 것'이라며 재심을 청구하거나 명예회복과 보상을 신청한 일일 것 같다.

민주화투쟁은 과연 조작된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명예가 훼손됐으며, 또 보상을 받아야 할까? 물론 조작되거나 명예가 훼손된 경우가 많다. 인혁당 사건처럼 조작과 명예훼손을 넘어 생명이 박탈되고 가족들의 삶이 황폐화하다시피 한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재심을 통해서라도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성을 확인함과 더불어 누명을 벗기고 보상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민주화를 위한 정당한 투쟁을 유죄로 판결한 근본적 잘못이 있긴 하나 판결문에 있는 내용 이상으로 투쟁한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민주화투쟁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마치 민주화투쟁이 없었던 것처럼 인식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따라서 민주화투쟁이 조작된 것이라며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받으려 하거나 명예가 훼손됐다며 명예회복과 보상을 신청하는 것은 민주화운동의 대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화투쟁은 독재정권시대의 투쟁이다. 독재정권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내용인 법치주의를 부인한다. 그래서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민주화투쟁이 오히려 불법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다면 독재정권이 아니다.

애당초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투쟁을 해놓고서 뒤늦게 합법성을 인정 받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그런데도 기어이 자신의 행위가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행위가 민주화투쟁이 아니었거나 그 시대의 정권이 독재정권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니, 이것은 민주화운동의 대의에 어긋난다.

더욱이 재심을 청구해 무죄가 된다면 그런 사람은 민주화투쟁을 하지 않은 것처럼 되어 오히려 부끄럽게 된다. 사실은 민주화투쟁을 열심히 했을 텐데도 말이다. 굳이 법리적으로 따지더라도 지난 시대의 사건에 대한 재심은 형법의 기본 원칙인 법률불소급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재심청구는 적절치 못하다.

민주화투쟁은 기본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전제한다. 군사독재시절 재판을 거부하거나 설사 재판에 응하더라도 공정한 재판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군사독재정권의 반민주폭력성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요체인 법치주의를 제대로 수호했다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독재정권을 물러나게 할 수 있어 민주화투쟁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군사독재시대에는 민주세력이 사법부를 심판했지, 사법부가 민주세력을 심판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사법부한테 무죄를 인정받기 위해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민주세력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은 처사다.

물론 지금은 사법부가 어느 정도 민주화된 점이 있다. 그러나 지난 시대의 어용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사법부의 민주화는 참된 의미의 민주화도 아니거니와, 특히 재심에서의 무죄 선고로 마치 사법부가 제 책무를 다해온 것인 양 으스대는 것은 민주화에 편승한 기회주의의 발로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화투쟁의 정당성 여부를 사법부의 심판에 맡기는 것은 전혀 옳지 못하다. 근본적으로 민주화투쟁은 사법부의 심판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의 판단, 역사의 평가에 맡기는 것이 옳다.

민주화운동으로 보상을 받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민주화운동은 누가 시키거나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다. 피해를 각오하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그런데 왜 보상을 받아야 할까? 그 보상금을 과거의 독재자들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어서 더욱 더 그렇다. 굳이 보상한다면 돈이 아니라 훈장 수여나 국가유공자 지정으로 할 일이다.

명예회복 신청도 문제다. 명예회복을 신청하는 것은 민주화투쟁으로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인데, 과연 민주화투쟁으로 명예가 훼손됐을까? 민주화투쟁으로 명예가 훼손됐다면 국민으로부터 어떻게 존경 받을 수 있겠는가?

명예가 훼손된 일이 없는데 명예회복을 신청한다면 이것이 오히려 명예 훼손이 될 것이다. 더욱이 명예회복 심의위원들의 상당수가 지난날 适澧?諍오?탄압한 사람인데도, 그런 사람의 심사를 받아 명예회복을 인정받아도 될까?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상과 상관없이 이미 과분할 정도의 보상을 받은 경우가 많다. 민주화운동 덕분에 국회의원이나 장관, 또는 대통령이 된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도 교묘히 명분을 만들어 보상 받은 일이 있는 데다 재심까지 청구해 무죄를 받고 형사보상금까지 받으니, 이래서야 어떻게 민주세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을 수 있겠나?

결국 민주세력의 재심 청구나 명예회복 및 보상 신청은 민주세력의 명예를 회복하기보다 명예를 훼손한 경우가 더 많을 뿐이다. 더욱이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이 민주세력 스스로에 의해 그것도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으니, 어찌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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