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많은 제품들이 상품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과학용어를 동원하거나 과학적임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쓰곤 한다. 그런데 이들 중 많은 경우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가도 이해할 수 없는 약자를 써서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체불명이거나 과장된 과학상식을 내세우는 경우다.
단적인 예가 음이온과 알칼리 환원수 등이다. 이들 제품들에 대한 과장되고 비상식적인 선전광고를 그대로 믿었다가 금전적인 피해를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먼저 음이온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대부분 원자나 분자는 전기적으로 중성 상태이지만 조건에 따라 전자가 많아 음전하를 띠게 되면 음이온이라 하고, 전자가 적어진 것은 양이온이라 한다. 예를 들어 소금은 물속에서 나트륨 양이온(Na+), 염소 음이온(Cl-)으로 존재한다. 문제는 대부분 이온 상태가 물속에서만 안정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우주선이나 방사선 등에 의해 공기 중에도 음이온이 극히 적은 양 발생할 수 있으나 아주 불안정해서 순간 정도만 존재한다.
음이온 발생 제품의 판매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1초당 수천 혹은 수만 개의 음이온이 발생한다 하더라고 주변 공기 중의 산소나 질소 분자 수에 비해 수학적으로도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극히 적은 양이다. 이런 정도의 음이온이 인체에 영향을 줄 리 만무하다. 도리어 음이온 발생기의 상당수가 고압 방전에 의해 생성된 오존을 다량 내뿜는데, 이 오존은 엄청나게 강한 살균 및 화학작용을 갖고 있어 인체에 상당히 해로운 영향을 줄 것이 우려된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일명 '알칼리 환원수'라는 정체 모를 화학용어를 사용한 제품이 마치 '기적의 물'처럼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에 녹아 있는 화학 물질들은 그 특성에 따라 산성, 중성 및 염기성을 띠는 물질로 나뉜다. 주방에서 흔히 쓰이는 식초는 산성이고 빵을 부풀리기 위해 넣는 베이킹파우더의 주성분인 탄산수소나트륨은 염기성 물질이다. 염기성을 알칼리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알칼리라는 것이 건강을 지칭하는 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심지어 "우리 몸을 알칼리로"라는 광고 문구까지 있다. 우리 몸의 혈액은 인종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항상 pH7.4를 자동으로 유지하게 되어 있다. 혈액의 pH가 0.1만 벗어나도 몸에 이상이 오고, 0.3까지 차이가 나면 죽음에 이른다.
알칼리 식품이라고 할 때의 알칼리는 화학교과서에 나오는 주기율표의 알칼리 족에서 기인한 말이다. 폭 넓게 체내에서 알칼리성 상호작용을 하는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칼슘 등 미네랄을 함유한 식품을 의미한다. 알칼리 환원수처럼 물의 전기분해에 의해 생성된 염기성 수용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이런 염기성을 띤 물을 먹더라도 강한 산으로 무장한 위 내에서는 위산 과다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정체불명의 과학용어나 잘못된 과학상식으로 소비자가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이런 문제가 여러 번 제기되었지만 정부의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한탕 치고 빠지는 악덕기업이 많다. 선량한 소비자의 피해를 없애고 건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감독하는 공식 검증을 거쳐야만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최정훈 한양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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