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정선의 '박연폭포'가 분홍빛과 코발트빛으로 은은하게 번져나간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한국화가 석철주(59ㆍ추계예대 교수)씨의 화폭 위에서다.
붉은색 혹은 푸른색 바탕을 입힌 캔버스 위에 흰색을 덧입히고, 색이 마르기 전 붓을 물에 적셔 바탕을 지워나가며 완성시킨 그의 산수화는 마치 신선이 놀다간 듯 몽롱하다.
그는 16세 때 청전 이상범의 문하에서 그림을 시작했지만 소재와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20세에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지만, 체계적 공부를 위해 27세 늦은 나이에 미대에 입학한 그는 1980년대에는 '탈춤' 연작, 90년대에는 항아리를 소재로 한 '생활일기_옹기' 연작, 2000년대 들어서는 '생활일기_식물이미지' 연작 등을 발표했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것은 1990년 개인전 때부터. "동양화 작가라 해서 꼭 수묵만 써야 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는 그는 "옹기 그림의 표면을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아크릴을 썼다"고 말했다.
"청전 선생께 산수화 안 그린다고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중에 그릴 때 되면 그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이제 고전 산수화와 자연으로 돌아오게 됐네요."
이번 전시는 두 파트로 나뉘어진다. 한옥 형태인 학고재갤러리 본관에는 고전 산수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현대식 건물인 신관에는 '자연의 기억' 연작을 걸었다.
바탕색 위에 검은색을 칠한 뒤 죽필이나 혁필 등으로 긁어내 우리 주변에 핀 들풀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가로 9m 캔버스에 그려진 푸른빛 '신몽유도원도'와 세로 9m짜리 흑백의 들풀 그림이 압권이다.
그가 재해석한 고전 산수화 중에는 조희룡의 '매화서옥도'와 전기의 '매화초옥도' 등 매화가 가득한 산속에서 속세를 잊은 채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많다.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처럼, 유행에 연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거대한 캔버스를 눕혀놓고 쪼그리고 앉아 하루 8~10시간씩 작업하는 탓에 2년 전에는 무릎 수술을 받았고, 작년에는 어깨가 탈이 나 작업을 한동안 쉬어야 했다. "학생들에게 늘 작업을 하다 쓰러져본 적 있냐고 물어봅니다.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린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8월 20일까지. (02)720-1524
글·사진=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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