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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산남수북' 중국 전통정신 잃어가는 '문화 고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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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산남수북' 중국 전통정신 잃어가는 '문화 고아들'이여…

입력
2009.07.1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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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샤오궁 지음ㆍ김윤진 옮김/이레 발행ㆍ504쪽ㆍ1만6,000원

"우리집 창문을 열면 맑고 환한 산수가 순식간에 나를 덮쳐오고, 그 찰나 나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경치에 도취되어 오장육부가 녹아드는 느낌을 갖게 된다. 청묵은 가장 멀리 있는 산이다. 옅은 먹색은 그 다음으로 멀리 떨어진 산을 그리고, 가벼운 먹색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산이다. 먹물의 농담과 초점으로 멀고 가까운 산이 표현된다. 산은 층층이 겹쳐 있기도 하고 굽이굽이 구부러져 있기도 한다."(99쪽)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중요 국가로 편입된 중국에서는 요즘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전통의 뿌리를 찾아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국의 황순원'으로 불리는 선총원(1902~1988)의 문학정신을 계승, 향토색 짙은 고향 이야기, 전래의 옛이야기 등을 재현하는 소설양식을 가리키는 '심근(尋根)문학'은 중국문학의 당대적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하방 경험이 있는 지식청년 출신으로 농촌에서 중국문화의 원천을 흡수, 창작의 영감으로 삼고 있는 한샤오궁(56)은 심근문학의 대표주자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작가다.

<산남수북(山南水北)> 은 중국 벽지의 전통적 삶을 통해 자본주의화돼 가고 있는 중국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샤오궁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 모음이다. 30년 간의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1999년 중국 남부 후난성의 작은 산골마을 바시로 낙향한 그의 농촌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99편의 에세이를 묶었다.

농촌의 삶 속으로 섞여 들어간 그는 전통과 문명의 관계를 정관(靜觀)하고, 노동을 예찬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통찰한다. '문화고아'는 경제광풍에 밀려 전통정신을 상실해가는 중국인들의 삶을 아쉬워하며, 전통마저도 모두 상품화ㆍ소비화시켜 버리는 시장주의를 비판하는 에세이.

그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동경과 지향은 한이 없지만 추억이 너무 적기 때문에 모두가 어머니를 잃어버린 문화고아들이 되어버렸다"며 "시장경제에서 실패한 낙오자들은 오직 가격의 차폐선 밖에 서 있어야만 할 뿐, 가격이 폭등한 어머니에게 가까이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개탄한다.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유머러스하게 소묘한 글들도 슬그머니 웃음을 짓게 한다. 닭장 속의 유일한 수컷이 고양이를 만나면 가장 앞장서서 맞서고 벌레를 보면 얼른 잡아 암탉들에게 양보하는 '이타적' 행동을 지켜보면서, 금수에게도 언어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인면수심(人面獸心)'이 아니라 '수면인심(獸面人心)'이라고 떠들어댈 것 같다는 풍자를 날리기도 한다.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에세이들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마지막 수록작 '도살되기를 기다리는 말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리다'는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33초'처럼 제목 말고는 공백으로 남겨뒀다. 2007년 루쉰문학상(에세이 부문)을 수상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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